의약품 리베이트가 쉽게 근절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내 최대 의료기기 구매대행사들이 병원에 20억원 규모의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하다 검찰에 적발됐다. 2010년 11월 의료기기 유통시장에 리베이트 쌍벌제가 적용된 이후 첫 적발로, 리베이트를 챙기는 데 병원도 적극 가담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정부합동 의약품 리베이트 전담수사반(반장 김우현 부장검사)은 15일 “불법 리베이트를 주고받은 혐의(의료법 위반 등)로 의료기기 구매대행사인 ‘케어캠프’ 대표이사 이모씨(60)와 ‘이지메디컴’ 영업본부장 진모씨(41), 서울의 모 대형 병원 행정부원장 신모씨(59) 등 15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케어캠프와 이지메디컴은 국내 대형 병원 9곳을 상대로 약 20억원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케어캠프와 이지메디컴은 6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국내 의료기기 유통시장의 70%가량을 점유하고 있다.

이들 업체와 병원은 정부의 ‘실거래가 상환제’의 허점을 악용했다. 실거래가 상환제란 의료기관이 약제나 치료 재료를 구입한 실거래가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보험급여를 청구하면 건보공단은 정부가 고시한 품목별 보험상한가 내에서 지급해주는 제도다. 케어캠프 등은 가격을 부풀린 거래계약서를 작성해 병원에 냈고, 병원은 이를 근거로 건강보험공단에 과다 청구했다.

검찰 관계자는 “병원이 거래가격을 부풀려 청구해도 건보 당국은 실거래가를 엄격하게 따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병원은 건보공단에서 받은 의료기기 대금을 업체에 건넨 뒤, 실거래 가격과 차액을 ‘정보이용료’라는 항목에 적용해 되돌려받았다. 검찰 관계자는 “병원 측은 업체에서 받은 리베이트를 합법적인 정보이용료라고 주장하지만 이 정보는 구매대행시 당연히 알려줘야 하는 정보였다”며 “병원들이 부당하게 받은 리베이트 전액을 추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약품과 달리 의료기기의 경우 2010년 리베이트 쌍벌제 도입 이전까지는 별다른 처벌 조항이 없었다.

전담수사반에 따르면 쌍벌제가 도입된 2010년 11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케어캠프가 병원에 제공한 리베이트는 17억원, 이지메디컴의 경우 2억4700만원인으로 파악됐다. 경희의료원(5억6000만원), 한림대성심병원(3억7000만원), 삼성창원병원(3억5000만원), 강북삼성병원(2억2000만원), 영남의료원(1억원), 제일병원(8400만원) 등이 이 기간 동안 케어캠프에서 리베이트를 건네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건국대병원(1억원), 경희대강동병원(1억원), 동국대병원(4700만원) 등도 이지메디컴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다.

병원들은 이렇게 받은 리베이트 자금을 대부분 운영비로 사용했으나 서울의 한 병원은 리베이트의 분배·보관 방식을 두고 의대교수들끼리 주먹다짐까지 벌였다고 검찰은 전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 병원 교수들의 폭력사건을 계기로 조사에 착수, 순환기내과에서 출처가 불분명한 ‘발전기금’을 찾아내면서 의료기기 리베이트 실태를 확인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2000년 이후 의료기기 유통시장에 구매대행사가 나타나 활동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 병원에 뿌려진 액수는 수백억원대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의료기기 거래에 따른 리베이트 근절을 위해 수사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장성호 기자 ja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