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나연(24)이 18번홀에서 ‘챔피언 퍼팅’을 끝내자 박세리(35)가 후배들과 함께 샴페인을 들고 달려와 축하세례를 해줬다. 박세리는 자신의 뒤를 이어 같은 곳에서 14년 만에 US여자오픈을 제패한 최나연을 부둥켜안고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최나연은 인터뷰에서 “세리 언니가 기다리고 있을 줄 몰랐다”며 “14년 전 이곳에서 우승하는 박세리를 보고 골프선수의 꿈을 키웠다”고 말했다.

지난해 ‘미국 LPGA투어 한국인 100번째 우승 금자탑’ 의 주인공이었던 최나연은 9일(한국시간) 1998년 박세리가 우승한 미 위스콘신주 콜러의 블랙울프런 챔피언십코스(파72·6954야드)에서 박세리의 영광을 재현하며 생애 첫 메이저대회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마지막날 10번홀(파5)에서 트리플보기를 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만회하고 1오버파 73타를 쳐 최종합계 7언더파 281타로 동반플레이를 펼친 양희영(23)을 4타차로 따돌렸다.

한국인으로는 박세리(1998년), 김주연(2005년), 박인비(2008년), 지은희(2009년), 유소연(2011년)에 이어 6번째 챔피언 등극이다. 메이저대회 우승자로는 10번째 한국인이다. 한국은 메이저대회에서 통산 14승을 올렸다. 박세리가 가장 많은 5승을 거뒀고 박지은 김주연 장정 박인비 지은희 신지애 유소연 유선영 등이 각각 우승컵을 안았다. 우승 상금 58만5000달러(약 6억6500만원)를 보탠 최나연은 상금랭킹 3위에 올랐다.

6타차 선두로 최종라운드에 돌입했으나 우승은 쉽지 않았다. 10번홀에서 갑자기 스윙이 빨라져 티샷이 왼쪽 해저드로 들어가면서 위기가 시작됐다. 더욱 불운했던 것은 티샷한 볼이 최후로 들어간 지점이 불명확했다.

최나연은 “해저드 바깥쪽을 맞고 떨어졌다고 증명할 길이 없었다”고 했다. 통상 빨간 말뚝이나 선으로 표시되는 ‘래터럴(Lateral·병행:코스와 나란히 붙어있다는 뜻) 해저드’에서는 볼이 최후로 해저드 경계선을 넘어선 지점과 홀을 연결하는 후방선상에서 1벌타를 부과한 뒤 드롭하고 칠 수 있다. 그러나 볼이 바로 해저드로 들어가면 바로 전에 샷한 지점으로 돌아가 플레이해야 한다.

12번홀(파4)에서도 두 번째 샷이 그린 왼쪽 깊은 러프에 떨어지는 바람에 다시 위기를 맞았다. 최나연은 “떨어진 곳이 너무 안 좋아 언플레이어블을 선언하려고 했으나 드롭 지점도 좋지 않았다. 캐디와 상의 후 탈출만 하자는 생각으로 무조건 세게 치자고 마음먹었다”고 설명했다. 볼은 홀에서 6m 떨어진 지점에 멈췄고, 그는 이 퍼팅을 성공시켰다. 우승을 결정짓는 ‘클러치 퍼팅’이었다. ‘더블 브레이크’가 있는 쉽지 않은 라인이었으나 과감한 퍼팅이 주효했다.

13번홀(파3·189야드)에서는 우드로 친 티샷이 그린 우측 해저드 경계석을 맞는 아찔한 순간을 맞았다. 우측으로 튀었으면 바로 해저드에 빠질 뻔했으나 앞으로 튀어 그린 뒤 러프에 멈추는 행운이 따랐다.

잇따라 위기가 다가왔지만 그는 대담함으로 이를 극복했다. 그러자 찬스가 왔고 15번홀에서 2.5m, 16번홀에서 4m 연속 버디를 낚으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그는 “전설로 불리는 박세리를 보고 나뿐만 아니라 모든 한국 선수들이 영감을 받았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앞으로 목표는 박세리처럼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우승으로 박세리의 영향을 받고 자란 ‘세리 키즈’ 가운데 그 뒤를 이을 진정한 후계자로 우뚝 섰다.

월드랭킹 2위에 오르며 청야니(대만)와 본격적인 ‘넘버 원’ 경쟁에도 불을 지폈다.

박세리는 이날 1타를 줄여 합계 4오버파 292타로 2008년 우승자 박인비(24)와 공동 9위를 차지했다. 2타를 줄인 이일희(24)는 합계 2오버파 공동 4위에 올랐고 지난해 우승자 유소연(22)은 합계 5오버파 공동 14위, 서희경(26)은 합계 6오버파 공동 18위로 대회를 마쳤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