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장애인 울리는 연금보험
“우리 부부가 죽고 나면 누가 이 아이를 돌봐줄지….”

다른 아이들보다 지적 발달이 늦고 의사소통 능력이 떨어지는 발달장애아(9)를 둔 김민섭 씨(40·가명)는 아이 생각만 하면 마음이 저린다. 고민 끝에 아이 명의로 연금보험에 들기로 마음먹었다. 자신들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아이가 평생 연금을 받아 살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여기 저기 알아보던 김씨는 힘이 쭉 빠졌다. 마땅한 보험 상품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아이를 위해 뭘 해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게 마음 아프다”고 했다.

장애인 전용보험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부 보험사가 ‘곰두리보험’이란 이름으로 장애인 전용보험을 팔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상품은 장애인이 암에 걸리거나 사망했을 때 보험금을 지급하는 상품이다. 김씨가 원하는 연금보험과는 거리가 멀다.

일반 연금보험도 김씨의 아이 같은 발달장애인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이런 상품들은 대부분 만 50~60세 이후에야 연금을 탈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반면 발달장애인은 보호자가 사망하면 30~40대에도 연금을 받아야 한다. 10명 중 9명은 보호자 없이는 일상 생활이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이런 조건에 맞는 연금보험이 전무한 것이다.

정부가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8일 “발달장애인과 장애아동 대상 연금상품 출시를 유도하겠다”고 발표했다. ‘40세 부모가 10세인 장애아를 위해 월 20만원씩 20년간 보험료를 내면 자녀가 45세부터 사망할 때까지 매달 43만원의 연금 수령이 가능한 보험’등 구체적인 상품설계 사례까지 제시했다. 상품 출시를 독려하기 위해 금융감독원과도 협의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정부의 이 같은 조치는 뒤늦은 감이 있지만 환영할 만한 일이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선 이미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보험상품이 적지 않다. 지난해 말 현재 국내 발달장애인 수는 18만3000명에 달한다. 이들을 위한 연금보험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

보험업계도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보험사들은 지난해 사상 최대인 6조원가량의 순이익을 올렸다. 일부 대형 보험사는 순이익이 1조원에 육박한다. 그런데도 발달장애인을 위한 변변한 연금보험 하나 없는 게 우리 업계의 현 주소다.

주용석 경제부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