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 금형업체 SST 임직원들은 2005년을 기점으로 회사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고 말한다. 고질병이었던 잦은 결근과 이직률이 뚝 떨어진 대신 생산성이 크게 올라갔기 때문이다. 임직원들은 2세 경영인인 최광훈 상무(38)가 변화 바람을 일으킨 주인공이라고 했다. 그가 입사한 뒤에 나타난 일이어서다.

최 상무가 입사하기 전 SST는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정밀 금형을 제조하기 위해선 5~6년 정도의 경험을 가진 숙련공들이 필요하지만 이런 기술자가 많지 않았다.

최 상무는 입사하자마자 이를 개선할 방안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는 우선 아버지인 최용식 사장(66)의 경영방식을 유심히 살펴봤다. 최 사장은 불만이 생긴 직원들에게 형제처럼 다정하게 대해줬다. 그러나 부족한 점이 하나 있었다. 직원들의 고민을 체계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문제가 생길 때마다 불러서 타이르는 방식이었다.

최 상무는 “직원들의 요구사항을 매번 들어주는 게 아니라 체계적인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선 직원들과의 1 대 1 면담을 정기적으로 가졌다. 포상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마련했다. 충주 용탄동에 있는 기숙사를 쾌적하게 만드는 데도 앞장섰다. 1978년 설립된 이 업체는 서울 독산동에서 공장을 돌리다가 2008년 충주로 이전했다. 충주로 내려온 직원들은 생활하는 데 불편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최 상무가 해결책을 찾았다. 그는 기숙사에 고급 목욕 시설과 오락 시설을 들였다. 회사 문제를 제3자의 눈으로 파악하기 위해 해마다 컨설팅을 받기로 한 것도 그의 결정이었다.

최 사장은 최 상무의 이 같은 행보에 처음엔 의구심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크게 만족하고 있다. 최 사장은 “아들이 회사에 입사한 뒤 생산성이 2배가량 높아졌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최 상무가 회사의 중심을 잘 지켜주고 있는 덕분에 최 사장은 회사 일뿐만 아니라 외부 활동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최 사장은 현재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 한국공구공업협동조합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SST는 자동차용 볼트를 만들 때 사용되는 금형을 제작하는 업체다. 국내 시장점유율은 30%에 달하며 선두를 달리고 있다.

최 사장이 금형과 인연을 맺은 것은 초경공구 업체 신서공업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하면서부터다. 이 업체에서 10년 동안 근무한 후 그는 1978년 서울 종로에 금형 유통업체인 신생상사를 설립하고 사업을 시작했다. 1980년엔 금형을 만드는 신생정밀을 세웠다. 같은 해 신생상사를 신생정밀에 통합, 제조만 하는 업체로 탈바꿈했다.

그러나 금형 기술을 익히기란 쉽지 않았다. 당시 한국의 금형 기술력은 선진국 업체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수준이었다. 대부분 일본 회사에서 제품을 수입하고 있었다. 최 사장은 이를 국산화하겠다고 결심, 일본 업체들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매번 실패하고 말았다. 다들 기술 제휴를 피하거나 거액을 요구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최 사장은 ‘아다이스’라는 업체의 아라키 히데오 사장을 알게 됐다. 아다이스는 기술력이 뛰어난 강소기업으로 소문나 있었다. 아라키 사장은 최 사장의 패기를 높게 사 SST와 기술 제휴를 맺겠다고 했다. SST는 이를 통해 초정밀 제품들을 만들었다. 기존엔 정밀도가 20마이크론에 불과했지만 2마이크론으로 강화했다.

이 같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SST는 국내 굴지의 볼트 업체들에 납품하기 시작했다. KPF, 선일다이파스, 태양금속, 삼진정공 등이 대표적인 주요 고객들이다. 해외 시장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가장 큰 시장은 일본이다. 도요타, 닛산 등과 거래하고 있다. 다시 유통 사업도 시작할 방침이다. 입사 전 금형 유통업에 종사했던 최 상무는 이를 주도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최 상무는 미국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 있는 SP카바이드다이사에서 2년가량 유통 업무를 맡았었다. 최 상무는 “아버지는 한번 마음먹은 일은 반드시 실행에 옮기신다”며 “아버지의 추진력을 본받아 기존 사업뿐만 아니라 새로운 분야도 적극 개척해 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충주=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