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에 대한 경고음이 여기저기서 들리며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이미 지적한 바 있듯이 10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는 그 규모와 증가 속도가 문제가 되고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이를 둘러싼 대책을 논의하는 데 있어 단순히 가계부채의 양적인 측면만 부각시켜서는 안 된다.

누군가 돈을 빌려쓰게 된다면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그 돈이 왜 필요하고 또 갚을 능력은 있는지일 것이다. 돈을 빌려 수익을 얻지 못하고, 궁극적으로 갚을 수 없게 된다면 가계의 파산은 물론이고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의 부실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출 구조와 같은 질적인 측면 역시 꼼꼼히 따져 보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가계부채를 보면 이런 측면에서도 우려스런 모습이 많아 보인다. 우선 가계대출 가운데 주택담보대출 비중이 높다. 지난 4월 말 현재 은행 및 비은행금융회사의 가계대출 635조원 가운데 주택담보대출은 391조원으로 60%를 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비중이 높아지면 대출금 상환능력은 부동산 경기에 크게 좌우될 수 있다. 지금처럼 부동산 경기가 나빠지면 가계대출에 적신호가 켜지는 이유다. 1990년대 일본 장기불황과 2008년 미국 경제위기가 부동산 경기 몰락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두 번째는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거치기간을 둠으로써 이자만 내는 대출금 비중이 80%에 달한다는 점이다. 이는 만기 시 일시상환 부담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하고 따라서 대출의 건전성이 낮아 부실 위험이 높다는 것을 뜻한다. 이 역시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해 원금 상환능력이 낮아지는 경우 더욱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소득증가율보다 대출증가율이 높은 것도 문제다. 돈을 빌려 소득의 부족분을 채우는 이른바 생계형 대출이 늘어난다는 말인데, 이는 경기침체와 대출증가의 악순환을 초래한다. 더구나 이런 현상이 저소득층에 집중돼 2금융권 대출이 커지게 되면 가계 부담이 커지면서 상황이 더욱 나빠질 수도 있다.

이처럼 가계부채의 문제는 양적으로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우려스런 상태다. 따라서 대출제한을 완화함으로써 부동산 경기의 침체를 타개해 보겠다는 식의 대증(對症)적 발상이나 거치기간 연장과 같은 미봉책, 부채탕감 등 도덕적 해이를 부를 수 있는 포퓰리즘식 정책 등으로는 문제해결이 어렵다.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규제의 틀을 유지하면서 취약 부분을 관리하는 단기대책과 함께 원금 분할상환의 비중을 높이는 중장기 대책, 더 길게는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한 근본적인 상환능력의 제고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당장 풍선이 터지지 않도록 하는 단기대책과 함께 풍선 안의 압력을 서서히 낮추는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대책이 병행돼야 한다. 물론 금융당국이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한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노택선 < 한국외국어대 경제학 교수 tsroh@hufs.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