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에 부화뇌동하는 부처의 예산 요구부터 꼼꼼하게 보겠다.”

김동연 기획재정부 2차관이 3일 현장 방문을 겸한 간담회에서 작심한 듯 한 말이다. 대선을 앞두고 터져나오는 정치권의 선심성 정책에 제동을 걸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한 것이다. 특히 현재 부모 소득에 상관없이 전 계층에 전액 지원하는 보육비를 소득계층별로 차등 지원하기로 하는 등 보편적 복지를 전면 손질하기로 해 논란이 예상된다.

◆0~2세 보육비만 2조

정부가 이날 ‘무상보육 전면 재검토’ 카드를 꺼내든 가장 큰 이유는 결국 ‘돈’이다. 무상보육을 확대하려면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자치단체도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데 이를 감당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올해 0~2세 무상보육에 드는 중앙정부 예산만 1조9000억원에 달한다. 지자체도 대략 이만큼을 부담해야 한다. 가뜩이나 재정난이 심한 지자체들은 “국가가 보육비를 지원하지 않으면 무상보육을 중단하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전 계층을 대상으로 한 보육비 지원이 실질적으로는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도 문제다. 김 차관이 “재벌가 아들과 손자에게까지 보육비를 대주는데 이것이 공정 사회에 맞는 것이냐”고 지적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현재의 보육체계가 일방적인 어린이집 쏠림 현상을 부추기고 있는 점도 개선해야 할 대목이다. 정부는 당초 0~2세 영·유아는 부모가 키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보육료 지원체계가 가정 양육보다 시설 보육(어린이집)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짜여지면서 계획이 틀어졌다. 0~2세의 경우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면 전 계층에 월 28만6000~39만4000원이 지원되는 반면 집에서 키울 때는 소득 하위 15% 계층(차상위계층)에만 월 10만~20만원이 지원된다.

하지만 정부 계획대로 무상보육을 수정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0~2세 전면 무상보육이 실시된 지 4개월여밖에 안 됐는데 이를 되돌리는 것은 정책의 일관성이 떨어진다. 또 올해 말 대선을 앞두고 한번 줬던 보육료를 깎을 경우 반발이 심할 수 있다는 것도 걸림돌이다.

정치권 눈치 보는 부처 손본다

김 차관은 또 내년 균형재정 달성을 위해 강력한 세출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각 부처가 임기 말 정치권의 눈치를 보면서 내년도 사업에 정치권 요구를 ‘알아서’ 반영하는 식의 행태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경고의 의미도 담겨 있다.

김 차관은 구체적으로 국방부의 사병 월급 인상 계획을 거론하면서 “합리적이지 않다”고 일침을 가했다.

재정부가 최근 각 정부 부처에서 내년 예산안을 제출받은 결과 국방부는 병사 월급을 26% 올리기로 하고 병사 인건비로 올해보다 1236억원 많은 6494억원을 요구했다. 재정부는 이를 여당인 새누리당을 의식한 결과로 보고 있다. 재정부는 이처럼 각 부처의 예산 편성 과정에 포퓰리즘적 성격이 없는지 따져보겠다는 ‘구두 경고’를 날린 것이다.

국책사업 계획대로 추진

정부는 주요 현안에 대해 새누리당과 민주당 등 정치권의 제동에도 불구하고 원안대로 밀고 가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특히 인천국제공항공사 지분 매각에 대해서는 매각을 당장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매각을 위한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라며 항공법 개정안을 올해 국회에 제출, 통과시킨다는 기존 방침을 재확인했다. 우리금융지주 매각 역시 공적자금 회수는 정부의 기본 책무라며 연내 성사를 목표로 계획대로 밀고 가겠다는 게 금융위원회의 변함없는 방침이다.

여기에는 정부가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목표로 삼고 있는 ‘2013년 균형재정’ 달성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심기/주용석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