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에 담고 있는 추억의 음식이 한두 개씩 있다. 필자의 경우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보글보글 끓여주시던 된장찌개다. 생각해보면 내용물이야 보잘 것 없었지만, 어머니의 된장찌개는 이제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맛볼 수 없는 추억을 담고 있다.

요즘같이 무더운 날이면 어머니가 만들어주셨던 냉콩국수는 어떤가? 흰콩을 맷돌에 갈아낸 콩국물을 삶은 소면 위에 붓고, 채 썬 오이를 얹고 깨소금을 송송 뿌려 후루룩 먹으면 더위가 씻은 듯이 사라지곤 하지 않았던가?

십여년 전 제빵회사에 몸담고부터 만나는 사람들마다 한결같이 어릴 적 먹던 크림빵의 추억을 꺼내 놓는다. 쫄깃쫄깃하고 구멍이 송송 뚫린 동그란 빵 사이에 하얀 크림이 발려 있던 크림빵.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둘이 한 개를 사서 한 면씩 나눠 먹기도 했는데, 서로 크림이 많이 발린 면을 차지하려고 다투기도 했다는 등 다들 그때를 행복했던 순간으로 떠올리고 있었다.

처음 만나 서먹서먹하다가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추억의 주인공이 크림빵이 되고 나면, 금세 수십년 지기처럼 가깝게 다가온다. 나 또한 학창시절 크림빵을 처음 접한 그때 그 맛을 잊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1964년 우리나라에서 처음 자동화설비를 갖추고 만든 빵 중 하나가 크림빵이다. 당시 크림빵을 사기 위해 공장 앞은 아침부터 북새통을 이뤘다고 한다. 빵을 산업의 반열에 올려 전 국민의 먹거리로 바꾼 주인공이 크림빵이었던 셈이다. 크림빵은 그로부터 50년 가까이 16억개가 넘게 팔린 장수 히트상품으로 자리잡았다.

크림빵과 관련된 일화가 하나 있다. 수년 전 크림빵 탄생의 주역인 창업주가 세상을 떠났을 때, 아들은 아버지의 빈소에 크림빵을 준비해 조문객들에게 선물했다. 아버지가 만들어 국민 대표간식으로 자리잡은 크림빵의 ‘추억’을 답례로 전한 것. 이를 받아든 조문객들이 잔잔한 감동을 받은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맛과 향을 가진 음식은 몸으로 들어와 가슴과 머리에 추억으로 저장되는 모양이다. 약과 음식은 그 근원이 같아서 좋은 음식은 약과 같은 효능을 낸다는 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는 말도 있다. 나는 여기에 음식이 가진 추억의 효능을 더해본다. 하루하루가 바쁘게 돌아가는 요즘에 추억을 말하는 것이 사치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추억은 늘 잊고 살아왔던 옛 기억들이 음식을 매개로 떠올라 각박한 삶을 보듬어주는 새로운 활력이 되어준다.

생각해보면 음식은 삶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어린 시절 어머니, 형제, 친구들과 함께한 아련한 기억들이 함께한 음식들로 구체화돼 현재에 되살아난다.

그래서 음식은 추억의 주인공일지도 모르겠다. 요즘 들어 어린 손주 녀석의 재롱에 시간가는 줄 모를 때가 있다. 먼 훗날 녀석이 이 할아버지를 떠올릴 추억의 음식은 무엇일지도 궁금해진다.

조상호 < SPC그룹 총괄사장 schcho@spc.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