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머니가 간다] 이탈리아 슈퍼카 업체 "날 좀 사줘요"…현대차에 러브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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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제일모직·신원 등 명품기업 사냥 잇단 합류
GS건설 등 원천기술 겨냥 플랜트 기업에 '눈독'
해외 현지금융 못 일으켜 中 등과 인수 경쟁 '걸림돌'
패션업체인 신원은 최근 이탈리아 밀라노에 사무소를 열기로 하고 직원을 채용하고 있다. 이랜드 제일모직 LG패션 등과 함께 현지 명품 업체 사냥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서다. 그런가 하면 현대자동차는 이탈리아 슈퍼카 브랜드인 디아토와 데토마소 등 2개사로부터 인수 의사를 타진받았다.
세계 6위의 경제 강국으로 꼽히는 이탈리아의 ‘백년 기업’들이 매물로 쏟아져 나오면서 한국 기업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다. 현지 인수·합병(M&A)시장에는 발렌티노와 베르사체 지분이 매물로 나와 있다. 패션 식품 등 소비재뿐만 아니다. 부품, 소재 같은 제조업 분야의 탄탄한 기업들도 물밑에서 한국 기업들을 접촉하고 있다. 움베르토 펜코살비 클리퍼드챈스 파트너 변호사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돌체&가바나, 잔프랑코페레 매각설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들 대거 매물로
이탈리아 기업들은 M&A 시장에 등장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마르코 탄지 마를로티 PwC 파트너는 “이탈리아 경제의 주축은 오랜 전통을 가진 중소기업”이라며 “대부분 가족경영인 데다 이탈리아가 재정위기에 빠지기 전까지만 해도 은행으로부터 쉽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남유럽 재정위기의 불길이 이탈리아로도 번지고, 은행들이 대출을 조이면서 밀라노 등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 지역의 강소 기업들이 매물로 등장하고 있다.
매물 상당수는 패션 브랜드들이다. 이탈리아 1위 로펌인 잔니 오리고니&파트너스의 마우로 삼바티 파트너 변호사는 “수면 위로 나오지 않은 것들까지 포함하면 수십 개의 대형 브랜드들이 매물로 나와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국 기업이 ‘빅 피시’를 낚을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밀라노 투자은행(IB)업계에 파다하다.
패션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매물들이 한국 기업과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M&A부티크인 클레페의 마시모 C 피초카로 대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혈액투석 기계 제조업체를 비롯해 30년 역사의 커피머신 회사, 요트 장비 업체 등이 한국에서 관심을 가질 만한 매물”이라고 소개했다.
작년 매출 5300만유로를 올렸으며, 18개국에 수출하고 있는 치즈회사 역시 매물 리스트에 올라 있다. 이 회사는 세리에A 농구팀의 스폰서이기도 하다.
○한국 기업, 이탈리아 강소기업에 눈독
한국 기업들은 이탈리아 기업 사냥을 위해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GS건설 등 플랜트업계는 테크니몽 등 원천 기술을 보유한 플랜트의 강자들이 매물로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마를로티 파트너는 “삼성이 북부 이탈리아의 기업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 중견 부품회사도 같은 업종의 이탈리아 기업 인수를 물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관계자는 “대기업 종속에서 벗어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해외 수출을 늘리는 것”이라며 “중소·중견기업들이 해외 M&A로 눈을 돌리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한국 기업들의 M&A 수요가 많아지자 이탈리아는 정부 차원에서 한국과의 협력을 꾀하고 있다. 이종건 KOTRA 밀라노비즈니스센터장은 “기술위원회라는 정부 기관이 자국의 기술 노하우를 전수하는 대신 외국 자본을 끌어오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며 “조만간 한국 기업들과 개별 면담을 가질 계획”이라고 말했다. 잔니 오리고니&파트너스는 최근 한국 기업만을 전담하는 ‘한국 데스크’를 별도로 만들었다. 서울에 사무소를 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기업문화와 자금조달 등이 과제
분위기는 무르익어가고 있지만 실제 M&A가 얼마나 많이 성사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밀라노에 진출해 있는 한국기업 관계자는 “이탈리아는 워낙 연줄 사회라 기업을 인수한 뒤 해고 등 구조조정이 쉽지 않다”며 “열심히 일하는 하드워크(hard work)에 익숙하지 않은 기업 문화도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M&A를 하려고 해도 인수 금융을 일으키지 못해 현금 동원 면에서 중국 등 경쟁 기업에 뒤떨어진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국책, 민간은행을 막론하고 현지에 나가 있는 국내 은행이 없기 때문이다.
밀라노에 진출해 있는 패션업체 관계자는 “예전엔 이탈리아 은행을 활용했는데 최근엔 은행들이 대출을 거의 해주지 않는다”며 “기업들이 오죽했으면 중국공상은행 등 중국 금융회사에서 돈을 끌어오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겠느냐”고 아쉬워했다.
밀라노=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