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나는 오늘도 통인시장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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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들 혁신 마인드로 대변신
재래시장이 문화·관광 중심지로
대형마트 규제 근본책 될수 없어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재래시장이 문화·관광 중심지로
대형마트 규제 근본책 될수 없어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지난해 가을 어느 날 저녁, 서울 도심의 한 재래시장에서다. 집사람과 장을 보는데 시장 뒤편에서 들려오는 은은한 노랫소리가 발걸음을 사로잡았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정지용 시에 곡을 붙인 ‘향수’다. 처음엔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았나 했다. 그런데 웬걸. 시장 골목을 벗어나자 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고, 그 앞 간이무대에는 가수 이동원이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라이브 공연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이게 웬 공연 복인가. 시장 한 상인이 뛰어나가 헌팅캡을 눌러쓴 이동원에게 오징어 한 축을 선물하자 그는 ‘가을편지’로 멋진 답례를 했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통인시장이다. 청와대가 걸어서 5분도 안 걸리는 곳에 위치한 도심 재래시장이다. 그동안 통인시장의 시설 현대화는 눈으로 확인했지만 고객들을 위해 음악회를 열 정도로 상인들의 마인드가 바뀌었는지는 정말 몰랐다. 푸른할인마트와 뽀빠이화원 사이 길을 막고 열린 그날 가을음악회 이후 나는 통인시장의 열혈 팬이 됐다.
그런 통인시장이 요즘은 또 다른 서비스로 인기를 더하고 있다. ‘도시락카페통(通)’이다. 아이디어가 재미있다. 먼저 시장 2층에 있는 도시락카페에 올라가 쿠폰을 산 뒤 1회용 도시락을 들고 시장으로 내려온다. 시장에는 반찬가게 김밥가게 등 가맹점이 즐비하다. 이곳에서 쿠폰 주고 계란말이니 동그랑땡이니 반찬을 주워 담는다. 다시 2층 카페로 올라와 밥과 국도 쿠폰 주고 산다. 말하자면 시장통 뷔페다. 쿠폰 5000원어치면 푸짐하다. 재래시장의 값싸고 맛난 아이디어가 입소문을 타면서 이제 통인시장은 주민들은 물론 광화문 일대 직장인들의 점심식사 장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통인시장도 2005년께 다른 재래시장과 마찬가지로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대규모 지원으로 현대화 작업이 이뤄졌다. 아케이드가 설치되고, 간판이 정비되고, 통로가 재포장됐다. 겉모습이 반듯해졌다. 하지만 그것이 통인시장의 직접적인 성공 요인은 아니었다. 통인시장의 성공은 누가 봐도 시장의 상인들이 스스로 고민해 찾아낸 아이디어를 서로 힘을 합쳐 실행에 옮긴 덕분이다. 상인들이 스스로를 돕자, 주변에서 이들을 돕겠다고 나선 사람들도 적지 않다.
가게마다 독특한 조형물들이 세워지고, 각종 전시회가 수시로 열린다. 상인들이 가게에 필요한 소품을 직접 만들기 위해 마련한 목공방은 고객들에게도 개방됐다. 고객이 쉬어갈 수 있는 정자가 세워졌고, 어린이들을 위한 시장체험학습도 정기적으로 열린다. 멀리서 통인시장을 찾는 고객들이 늘기 시작한 것은 괜한 일이 아니다. 통인시장은 이제 지역 재래상권의 중심지를 넘어 서촌(西村) 문화와 관광의 중심지 역할까지 해내고 있다.
지난 10년간 재래시장 활성화에 투입된 정부 예산이 1조6000억원에 가깝다고 한다. 하지만 시장은 그 사이 10분의 1이 사라졌고, 매출은 3분의 1이 줄어들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부와 지자체는 소비자들이 재래시장을 찾지 않는 근본 원인을 파악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예산 지원에 나섰고, 상인들은 스스로의 변신을 포기한 탓이다. 대형마트·SSM의 휴일 영업과 야간 영업을 제한한 것도 궁여지책이긴 마찬가지다. 정치권이 영세상인들의 활로를 진심으로 걱정했다기보다는 대기업을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 반대급부를 얻고자 한 측면이 크다.
재래시장과 영세상인의 활로는 소비자들의 소비행태 변화에 맞춰 상인들 스스로 변신하고 혁신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예산도 그런 곳에 주어지는 게 맞다. 마구잡이로 재래시장을 지원하는 정책은 오히려 구조조정만 지연시킬 뿐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재래시장 지원을 외치며 대형마트와 SSM의 휴일 영업과 야간 영업을 금지한 조례가 위법하다는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에 맞서고 있다. 유통산업발전법을 뜯어고쳐서라도 대형마트의 휴일 영업을 금지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대선주자들은 여전히 민심은 재래시장에 있다며 전국의 시장을 누비며 불을 때고 있고.
이들 정치인에게 대형마트가 문을 닫는 일요일 통인시장에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통인시장 고객들에게 일일이 물어봤으면 한다. 과연 대형마트가 문을 닫아서 이곳을 찾는지를.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통인시장이다. 청와대가 걸어서 5분도 안 걸리는 곳에 위치한 도심 재래시장이다. 그동안 통인시장의 시설 현대화는 눈으로 확인했지만 고객들을 위해 음악회를 열 정도로 상인들의 마인드가 바뀌었는지는 정말 몰랐다. 푸른할인마트와 뽀빠이화원 사이 길을 막고 열린 그날 가을음악회 이후 나는 통인시장의 열혈 팬이 됐다.
그런 통인시장이 요즘은 또 다른 서비스로 인기를 더하고 있다. ‘도시락카페통(通)’이다. 아이디어가 재미있다. 먼저 시장 2층에 있는 도시락카페에 올라가 쿠폰을 산 뒤 1회용 도시락을 들고 시장으로 내려온다. 시장에는 반찬가게 김밥가게 등 가맹점이 즐비하다. 이곳에서 쿠폰 주고 계란말이니 동그랑땡이니 반찬을 주워 담는다. 다시 2층 카페로 올라와 밥과 국도 쿠폰 주고 산다. 말하자면 시장통 뷔페다. 쿠폰 5000원어치면 푸짐하다. 재래시장의 값싸고 맛난 아이디어가 입소문을 타면서 이제 통인시장은 주민들은 물론 광화문 일대 직장인들의 점심식사 장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통인시장도 2005년께 다른 재래시장과 마찬가지로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대규모 지원으로 현대화 작업이 이뤄졌다. 아케이드가 설치되고, 간판이 정비되고, 통로가 재포장됐다. 겉모습이 반듯해졌다. 하지만 그것이 통인시장의 직접적인 성공 요인은 아니었다. 통인시장의 성공은 누가 봐도 시장의 상인들이 스스로 고민해 찾아낸 아이디어를 서로 힘을 합쳐 실행에 옮긴 덕분이다. 상인들이 스스로를 돕자, 주변에서 이들을 돕겠다고 나선 사람들도 적지 않다.
가게마다 독특한 조형물들이 세워지고, 각종 전시회가 수시로 열린다. 상인들이 가게에 필요한 소품을 직접 만들기 위해 마련한 목공방은 고객들에게도 개방됐다. 고객이 쉬어갈 수 있는 정자가 세워졌고, 어린이들을 위한 시장체험학습도 정기적으로 열린다. 멀리서 통인시장을 찾는 고객들이 늘기 시작한 것은 괜한 일이 아니다. 통인시장은 이제 지역 재래상권의 중심지를 넘어 서촌(西村) 문화와 관광의 중심지 역할까지 해내고 있다.
지난 10년간 재래시장 활성화에 투입된 정부 예산이 1조6000억원에 가깝다고 한다. 하지만 시장은 그 사이 10분의 1이 사라졌고, 매출은 3분의 1이 줄어들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부와 지자체는 소비자들이 재래시장을 찾지 않는 근본 원인을 파악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예산 지원에 나섰고, 상인들은 스스로의 변신을 포기한 탓이다. 대형마트·SSM의 휴일 영업과 야간 영업을 제한한 것도 궁여지책이긴 마찬가지다. 정치권이 영세상인들의 활로를 진심으로 걱정했다기보다는 대기업을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 반대급부를 얻고자 한 측면이 크다.
재래시장과 영세상인의 활로는 소비자들의 소비행태 변화에 맞춰 상인들 스스로 변신하고 혁신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예산도 그런 곳에 주어지는 게 맞다. 마구잡이로 재래시장을 지원하는 정책은 오히려 구조조정만 지연시킬 뿐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재래시장 지원을 외치며 대형마트와 SSM의 휴일 영업과 야간 영업을 금지한 조례가 위법하다는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에 맞서고 있다. 유통산업발전법을 뜯어고쳐서라도 대형마트의 휴일 영업을 금지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대선주자들은 여전히 민심은 재래시장에 있다며 전국의 시장을 누비며 불을 때고 있고.
이들 정치인에게 대형마트가 문을 닫는 일요일 통인시장에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통인시장 고객들에게 일일이 물어봤으면 한다. 과연 대형마트가 문을 닫아서 이곳을 찾는지를.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