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가 구내식당 사업자 입찰 과정에서 중소기업을 전면 배제하기로 했다. 대신 지난달 한국전력 급식사업 입찰에서 ‘대기업 친족’이란 이유로 배제됐던 아워홈을 비롯 9개의 대기업·중견기업들을 대상으로 입찰을 실시하기로 했다. 이 같은 결정은 공공부문 급식사업에 대기업 진입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KIST 측은 “상주 직원이 2000명이 넘어 중소기업에 식당 운영을 맡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며 “대기업을 급식업체에서 제외하라는 정부 방침은 강제가 아닌 권고 사항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KIST, 자산 5조원 이상 제한

KIST는 기존 구내식당 운영업체인 삼성에버랜드와의 계약 만료를 앞두고 새로운 사업자 선정에 나선 상태다. 최근 입찰 설명회에 참여한 업체는 9곳. KIST 측이 참가자격을 자산 5조원 이상의 대기업과 중견기업으로 제한하면서 중소기업(상근근로자 200명 미만, 매출 200억원 미만)들은 처음부터 후보 대상에서 빠졌다.

지난 4~5월 진행됐던 한국전력 급식사업 입찰과는 대조적인 풍경이다. 당시엔 대기업 참여가 완전히 배제된 가운데 중견기업과 중소기업 위주로 입찰 경쟁이 펼쳐졌고, 동원홈푸드가 사업권을 따냈다. 모기업인 동원그룹은 상호출자제한집단에 소속돼있지 않다.

KIST의 입찰 담당자는 “한전처럼 중소기업을 배려하는 것도 좋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급식 수준과 위생 문제”라며 “직원들의 건강을 위해 역량이 어느 정도 검증된 업체를 중심으로 선정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 성북구 화랑로에 있는 KIST 연구단지에는 정규 직원 714명을 포함해 위촉연구원 등 총 2200명의 인원이 상주하고 있다.

정부, 용인해줄까

정부는 동반 성장을 내걸고 지난 3월 공공기관 급식업체 입찰 과정에 자산 5조원 이상의 상호출자제한집단 소속 대기업들의 참여를 제한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매출 기준 2~6위인 에버랜드, 현대그린푸드, 신세계푸드, 한화호텔&리조트, CJ프레시웨이 등 5개 대기업이 우선 배제됐다. 업계 1위인 아워홈은 자산 규모 5조원 이하인 중견기업에 속하지만, 범LG계열이라는 이유로 지난달 뒤늦게 제한 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정부는 난감해하는 분위기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대기업의 공공기관 사업 참여를 법적으로 막을 길은 없다”며 “정부 방침은 강제가 아닌 권고 사항일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는 정부가 지난번 한전 입찰에서 아워홈을 주저앉혔던 것처럼 KIST를 상대로 ‘압력’을 행사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KIST의 결정은 다른 공공기관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당장 다음달 예정된 관세청의 ‘외국인 전용 시내면세점’ 사업자 선정이 주목된다. 관세청 측은 “일단은 정부 방침대로 대기업에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대기업들과의 급식 위탁 계약이 종료되는 공기업들은 40여개로 추산된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