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제은행(BIS)이 연례보고서를 통해 중앙은행들의 계속되는 돈풀기(양적완화) 정책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지금의 유럽 재정위기 등으로 각국 중앙은행들이 앞다퉈 돈을 푸는 비정상적 상황이 너무 오래 이어지면서 재정 건전성 확보, 은행의 재무제표 개선 등 정작 필요한 개혁조치들은 제대로 실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돈 풀기를 계속해 봤자 또 다른 위기의 불씨가 될 뿐이라는 게 BIS의 주장이다. 유로존 위기로 또 돈을 풀라는 압박이 고조되는 가운데 각국 중앙은행 간 협력기구인 BIS가 통화정책의 한계를 고백했다는 것은 주목할 부분이다.

BIS는 금융위기→재정위기→금융위기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뒤이은 지금의 유로존 위기가 바로 그런 악순환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부채가 해소되지 않는 상황에서 계속 돈만 풀다가는 금융과 재정 간 끝도 없는 위기의 악순환만 되풀이될 뿐이라는 지적이다.

BIS의 이 같은 경고는 비단 유럽에만 해당되는 게 아닐 것이다. 미국도 경기회복이 지지부진한 조짐이 이어지자 3차 양적완화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까지 미 중앙은행이 물가목표치를 올려서라도 돈을 왕창 풀면 실업률이 일거에 해결될 것이라고 호도할 정도다. 중앙은행더러 인플레이션 관리책임을 아예 벗어 던지라는 실로 무모한 주장이다. 이렇게 선진국들이 앞다퉈 돈을 풀게 되면 그 돈은 결국 상대적으로 성장률이 높은 신흥국 등으로 흘러들어가 자산거품으로 이어져 새로운 금융위기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 폭탄 돌리기요 삶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연장일 뿐이다.

유럽연합(EU) 정상회담을 앞두고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지금의 경제위기를 일거에 해결할 손쉬운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백번 맞는 말이다. BIS 권고대로 재정위기국들은 공공부문을 개혁하고 노동과 기업규제 등 성장을 저해하는 장벽들을 제거하는 즉각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극히 상식적이고 기본적인 이런 처방이야말로 위기의 근본 해법이라는 게 BIS의 메시지다. 이는 동시에 한경 사설이 누누이 강조해왔던 원칙이기도 하다. 돈풀어 경제 살린다는 미몽에서 깨어나 생산성을 높이고 경쟁력을 갖추는 일이야말로 진정 경제를 살린다는 것을 재인식할 때다. 돈풀어 경제 살린다는 것은 마약을 주입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