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김장수 前 국방부장관 "고개 숙여선 평화 얻을 수 없어…힘 보여줘야 北도 도발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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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62주년에 만난 김장수 前 국방부장관
개인주의적 성향 젊은 세대, 천안함 계기 애국심 높아져
진보와 종북은 달라…국회의원은 안보관 밝혀야
군입대 자랑스러워 해야…한경 '1사1병영' 軍에 큰 도움
개인주의적 성향 젊은 세대, 천안함 계기 애국심 높아져
진보와 종북은 달라…국회의원은 안보관 밝혀야
군입대 자랑스러워 해야…한경 '1사1병영' 軍에 큰 도움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맞은편 J빌딩 현관에서 만난 김장수 전 국방부 장관은 기자를 보자마자 고개를 30도 정도 숙이며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을 대할 때 조금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던 그가 이렇게 자세를 낮추다니 왠지 우쭐해졌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의 설명을 들으니 금방 이해가 갔다. 그는 “저도 원래 악수할 때 목례를 하는데 2007년 평양에서 김정일을 만날 땐 일부러 그랬다”고 말했다. “국방장관이 (적의 우두머리에) 머리를 숙이면 군 사기는 어떻게 되며, 장병들에게 어떻게 안보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김 전 장관은 “당당하게 맞서고 우리도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평화를 이룰 수 있지, 구걸로는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지난 20일 국회앞 그의 사무실에서 2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김 전 장관은 인터뷰 내내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천안함 자작극’ 등으로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는 종북세력을 조목조목 비난했다.
▷6·25 전쟁이 일어난 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올해는 제2연평해전 10주년이기도 합니다.
“오는 29일은 참수리호가 피격돼 6명의 장병들이 운명을 달리한 날입니다. 한동안 연평해전의 의미가 망각되는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다행히 천안함 폭침을 계기로 안보의식이 높아졌습니다.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젊은 세대 사이엔 ‘실용적 애국주의’란 말도 생겨났습니다. 예전처럼 국가를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게 아니라 실용적(경제적)으로 나라의 발전과 안전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애국심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20~30대들은 천안함 사태를 지켜보면서 애국심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천안함 피폭 당시 군을 강하게 질책했었습니다.
“군이 완고하고 위선적인 형식주의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었죠. 국민의 안위를 책임지는 68만명의 군대가 의장대입니까. 당장 우리 국민과 영토가 공격당하고 있는데 교전수칙을 따지다니요. 군수뇌부가 형식논리(교전수칙)만 따져 제가 역정을 좀 냈습니다.”
▷북한의 도발에 ‘강력한 응징’을 강조하는 이유가 뭡니까.
“응징을 이야기하면 일부에선 ‘그럼 전쟁을 하자는 이야기냐’고 반박합니다. 하지만 평화는 구걸해서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북한이 도발하면 철저히 응징해서 기를 꺾어야 합니다. 전쟁을 벌여 좋을 것이 절대 없다는 것을 북한도 잘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우리도 가만있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줘야 전쟁도 억제할 수 있습니다. 평화는 말이 아니라 강인한 의지와 행동으로 지키는 겁니다.”
▷아직도 천안함 사건이 정부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하는 정치인이 있습니다.
“천안함 침몰이라는 사건보다 훨씬 무서운 것이 바로 그런 세력에 의한 국론 분열입니다. 천안함 침몰이 정부가 조작한다고 가능한 일입니까? 그런 대규모 조작을 기획하고 실천하고 통제까지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반박할 수 없는 각종 증거들이 있습니다.”
▷그래도 못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군의 초기 대응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레이더나 열영상장비(TOD) 자료들은 신속히 공개했어야 논란을 줄일 수 있었죠. 하지만 밝혀질 것 다 밝혀졌는데도 여전히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정상적이라면 사실이 명명백백 드러난 지금 자기 주장이 잘못됐다고 고해성사를 해야 합니다.”
▷‘자작극’을 주장하는 국회의원도 있어 정치권에서 종북 논란이 뜨겁습니다.
“진보와 종북은 같은 개념이 아닙니다. 진보라면 북한 인권이나 핵, 3대 세습도 비판해야 합니다. 그런 말도 못하면서 대한민국의 정통성만 부정하다니요. 북한을 추종하는 종북이 진보의 탈을 쓰고 민주화를 주장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최근 사건들을 계기로 많은 국민들이 종북의 실체를 알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부분입니다. 오는 12월 대선에서 국민들은 투표로 종북세력을 심판할 것이라 믿습니다.”
▷종북 의원들에 대한 국가기밀 접근제한 논의도 나오고 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안보와 관련된 기밀을 취급할 수 있는 상임위원회에 배치되는 것은 국가적인 불행입니다. 국회의원은 안보관에 대해 국민에게 밝혀야 합니다. 여당도 문제입니다. 일부 야권의 종북논란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방위원장을 야권에 주겠다는 논의를 진행하다니요. 안보는 최우선 복지입니다. 국가가 국민에게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서비스가 바로 안보이기 때문입니다.”
▷안보의식을 높이려면 사회 분위기도 중요하겠지요.
“우리 자녀들이 군에 가는 걸 자랑스러워하는 풍토가 조성돼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경제신문과 국방부가 함께하는 ‘1사 1병영’은 정말 값진 기획입니다. 기업과 군을 맺어주는 ‘1사 1병영’은 군의 사기 진작에도 크게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기획을 더 확대해 사병들의 취업도 연결해 줬으면 합니다. 전역을 앞둔 장병들의 취업 문제에 기업들이 나서주기만 해도 군 사기와 안보의식이 크게 올라갑니다.”
▷논란이 되고 있는 군가산점제도는 어떻게 보십니까.
“군대는 문화시설이 아닙니다. 자유를 박탈하는 수용시설이죠. 2년을 그런 곳에서 보내는 것만 해도 충분히 보상을 해줘야 합니다. 정상적인 군 복무를 마친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들로부터 마땅히 존경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물론 신체 장애 등으로 군대를 못 간 사람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겠지요. 군가산점제를 도입하더라도 제한적인 범위에서 운용한다면 큰 문제가 없을 겁니다.”
▷제주도 해군기지 논란에 대한 생각은.
“제가 국방부 장관일 때 결정된 사안입니다. 최종 결정을 앞두고 김태완 당시 제주도지사를 만나러 갔습니다. 해녀 등 반대하는 이들이 제주도청 앞에 모여 있었죠. 그 자리에서 환경영향을 최소화하고 경제 발전에 도움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쪽 요구대로 시뮬레이션도 했고요. 그런데 정권이 바뀌니까 그때 일을 추진했던 일부 사람들도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종북 세력들이 ‘해적기지’라는 말까지 들고 나왔죠. 사정이 달라졌다고 국가 정책과 안보를 이렇게 매도해서는 안됩니다.”
▷2007년 평양 남북 정상회의에서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을 만났을 때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악수한 장면이 화제가 됐습니다. ‘꼿꼿장수’라는 별명도 생겼지요.
“일부러 그랬습니다. 저도 평소에는 악수할 때 고개를 숙입니다. 그것이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고 예의입니다. 하지만 제가 김정일에게 고개를 숙였으면 68만 장병들이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정훈교육 아무리 시켜도 다 헛일이 되는 겁니다.”
▷다른 ‘꼿꼿한’ 에피소드들이 있습니까.
“2007년 말에는 장관급 실무회담이 있었습니다. 김일철 당시 인민무력부장이 주한미군으로 시비를 걸더군요. ‘우리 민족끼리 하면 되는데 왜 남측에 미군이 주둔하냐’는 거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김일철 선생, 주한미군 문제는 과거 김일성 주석이 살아 있을 때부터 동북아 세력 균형을 위해 양해한 것이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그 부분은 거론하지 않고 있고. 김 위원장에게 물어보시오.’ 그랬더니 아무 말도 안하더군요. 북방한계선(NLL)에 대한 시비나 미군과의 전시작전통제권 문제도 그렇게 정면 돌파했습니다.”
▷장관 퇴임 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비례대표가 됐습니다. ‘배신했다’는 비판도 있었는데요.
“광주 출신이기에 그런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군인이고 관료였지 정치인이 아니었습니다. 의원이 된 건 전직 국방부 장관으로서 전문성을 활용해 나라에 보탬이 될 수 있겠다 싶었던 것이었죠. 지금에서야 얘기하지만 굳이 한나라당을 택한 건 군에 있는 후배들을 위해서였습니다. 제가 야당으로 가면 제가 키웠던 후배들이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박근혜 새누리당 전 대표의 ‘안보특보’로 활동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소문이 과장된 겁니다. 안보특보로 임명된 적도 없습니다. 현안이 있으면 가끔 의견을 제시하는 수준입니다. 박 전 대표를 두고 소통이 안 되는 닫힌 사람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는데 제가 볼 땐 그렇지 않습니다.”
◆ 김장수 前 장관은…
김정일에 목례 거부, 굽힘 없는 '꼿꼿장수'…NLL 논란 정면돌파
광주제일고를 나와 육군사관학교 27기로 임관했다. 육군 6사단장, 7군단장,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거쳐 2005년 육군 참모총장에 임명됐다. 2006년 참모총장 재직 중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국방장관에 발탁됐다. 참모총장에서 곧바로 국방장관에 임명되기는 창군 이래 처음이다.
직언을 마다하지 않는 ‘소신파’로 알려져 있다. 2005년 연천 530 GP 총기 난사 사건 때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각종 안보기밀이 연일 노출되자 당시 참모총장이었던 그는 ‘국익에 반하는 기밀 공개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국회의 무분별한 자료 제출 요구를 거부하기도 했다.
2007년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과 악수할 때 고개를 숙이지 않아 ‘꼿꼿장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미군이 일방적으로 선포한) 북방한계선(NLL)은 영토선이 아니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노 전 대통령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그는 국회와 한미군사회담 등에서 “NLL은 우리의 해상경계선 역할을 하고 있어 NLL 재설정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2008년에는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해 국방위원회에서 활동했다.“19대에는 지역구로 나서지 않겠다”는 약속대로 지난 총선 때는 출마하지 않았다.
김태철/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