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임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건축 설계 분야도 ‘스피드’가 생명입니다. 남보다 앞서기 위해서는 한발 빨리 발주처의 니즈(요구사항)를 알고 부단히 뛰어다녀야 합니다.”

서울 역삼동에 있는 남도음식 전문점 예향에서 만난 정영균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 총괄사장(50)은 조금 마른 체격에 날렵해 보였다. 걸음과 말이 남보다 두 배는 빨랐다. 급한 성격이란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런 CEO의 성향을 반영하듯 회사는 속도전으로 움직이고 있다. 1970년 설립된 희림은 1990년대 매년 50%씩 성장하면서 ‘변화와 혁신을 바탕으로 한 속도’라는 키워드가 성장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1994년 부장으로 입사한 정 사장이 7년 만에 대표이사에 오르면서 회사 전체에 속도 DNA를 심은 결과다. 그의 ‘속도론’은 희림을 설계 분야에서 유일한 상장사로 탈바꿈했고 해외 시장을 가장 먼저 개척한 선구자라는 평가를 듣게 했다.

정 사장은 “해외 설계는 주어진 시간 안에 좋은 아이디어를 짜내는 싸움이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며 “금융비용을 줄이기 위해 발주 기간이 더 짧아지고 있어 단기간에 남들보다 더 좋은 작품을 내놓는 게 생존 동력”이라고 강조했다.

속도를 강조하다 보니 스트레스를 피할 수 없다. 그럴 때면 찾는 곳이 예향이다. 숯불구이 등심이 일품인 곳이다. “이동량이 많아서인지 살이 잘 안 찝니다. 체력이 떨어졌다는 생각이 들 때면 고기를 먹습니다. 2남1녀 중 막내인데 어렸을 때 형 누나와 15인분을 먹은 적도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체력이 회복된 걸 느끼실 겁니다. 사장님 꽃등심 빨리 좀 주세요(웃음).”

▶설계업에 몸담은 지 20년이 훨씬 넘었습니다.

“벌써 그렇게 됐네요. 평소 ‘건물 하나가 도시를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은 전시품보다 미술관 자체가 명소지요. 바스크 지방의 공업도시인 빌바오를 매년 100만명이 찾는 관광도시로 탈바꿈한 건축물입니다. 건축 설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좋은 사례죠.”

▶희림의 역사가 국내 설계의 역사라는데.

“희림이 설계한 프로젝트는 서울 코엑스몰과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인천공항과 인천 아시안게임 주경기장, 부산 영화의 전당 등 수두룩합니다. 지방으로 이전하는 혁신도시 공공기관 청사 중 전기안전공사 전력거래소 석유공사 등 무려 17개를 수주했습니다. 건축대상을 받거나 지역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단지는 서울 상암동 새천년주거단지, 잠실 갤러리아팰리스, 경기 수원 권선동 아이파크, 성남 판교 대림 휴먼시아 등 셀 수 없이 많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축물은 무엇입니까.

“부산국제영화제 전용관인 ‘영화의 전당’이 특별히 기억에 남아요. 이 건물에 설치된 가로 163m, 세로 60m의 ‘빅루프’는 세계 최대 캔틸레버(cantilever·한쪽 끝이 고정되고 다른 끝은 받쳐지지 않은 상태로 돼 있는 들보) 구조의 지붕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관심을 끄는 데는 영화제의 장소도 한몫했다는 얘깁니다. 부산시와 영화제사무국이 투자를 아끼지 않아 좋은 작품이 나온 겁니다. 안타까운 작품도 있죠. 국민은행이 1997년 서울 종로4가 담배인삼공사 부지(현 주얼리시티)에 본사를 짓기로 하는 공모 설계 프로젝트를 따냈습니다. 설계대로 40층짜리 건물이 들어섰다면 낙후된 종로의 상권 지도가 확 달라졌을 겁니다. 행장이 바뀌고 본사는 여의도 등 금융타운 쪽에 들어서야 하지 않느냐는 내부 주장 때문에 결국 무산된 게 아직도 마음에 남습니다.”

▶건축 설계를 시작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어렸을 때는 당연히 의사나 변호사가 꿈이었어요. 대학 입시를 앞두고 고민해 보니 엔지니어링이나 건축 쪽이 적성에 맞는 것 같더라고요. 건축 설계는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환경을 제공할 수 있잖아요. 의학이나 법학보다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이로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물론 대학 때 제대로 선택한 건지 고민도 많이 했죠.”

▶‘제2의 창업’을 주도했다는데.

“미국 설계업체에서 5년간 근무한 뒤 1994년 서른두 살에 부장으로 희림에 입사했어요. 당시 전체 직원이 80명 정도밖에 안 됐는데 18년이 지난 지금은 900명이 넘으니 10배 이상 커졌네요. 초창기 사옥이 없어서 남의 건물에 세 들었는데 밤 12시면 건물 경비원이 문을 잠가 버리는 바람에 야근을 밥 먹듯이 했어요. 본의 아니게 새벽 4시까지 무임금으로 일했죠. 직원들을 새로 뽑고 금융권 본사에 한정된 사업 영역을 주거시설 상업시설 등으로 확장했습니다. 해외 시장도 처음 개척했습니다.”

정 사장의 휴대폰은 식사 도중 쉴 새 없이 울렸다. 인천과 서울 수서동 본사를 오가며 해외 발주처에 설명한 국내 개발 프로젝트에 대한 문의가 저녁까지 이어졌던 것. “미팅 중에도 전화가 잇따라 결례를 수시로 범합니다(웃음).”

▶해외 사업은 어떻게 추진하게 됐나요.

“1997년 아무 연고도 없는 홍콩 프로젝트에 도전했습니다. 홍콩 주택공사가 발주한 고층 주상복합 설계 공모안이었습니다. 회사 내에서도 무모하다는 시선 일색이었죠. 설계비가 200억원에 달하는 대형 프로젝트여서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업체 80여곳이 달려들었어요. 해외 설계업계에서 무명인 희림이 당선되자 다들 황당해하더라고요. 우리 실력으로도 얼마든지 도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어요. 그런데 현지 업체가 우리를 빼고 발주처와 계약해 버렸습니다. 홍콩 법원을 수도 없이 들락거렸지만 계약을 성사시키지는 못했어요. 우리가 미국 회사였다면 그런 일을 안 당했을 겁니다. 그때는 국력도 약했고 정부가 해외 진출 기업을 지원하는 인식도 부족해 어려움이 많았죠.”

▶시행사업에도 참여했다고 들었어요.

“인천공항의 한 상업시설 설계를 맡으면서 시행사에 일부 지분을 참여했다가 결국 모든 사업을 떠안았어요. 수업료를 톡톡히 치렀습니다. 이후 ‘남이 잘 되게 돕는 조력자에 머물러야 한다’는 신조를 갖게 됐습니다. 앞으로도 직접 투자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집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분당의 한 주상복합아파트에 사는데 아직 집 지을 생각을 안 해봤어요.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하잖아요. 아내가 아파트를 편하게 생각해서인지 제가 직접 설계해서 보금자리를 꾸밀 가능성은 낮아요.”

▶직원으로 입사해 1대 주주가 됐습니다.

“(정 사장은 이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입사 이후 주거시설 등 새로운 분야와 해외시장을 두드리며 외형을 키워 가는 데 전력을 다했습니다. 2001년 창업주(이영희 회장)께 회사를 이끌어 가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후 지분을 순차적으로 인수해 지금은 26.7%로 최대주주가 됐습니다. 직원들이 잘 따라줘 고마울 따름이죠.”

정 사장은 두꺼운 꽃등심에 이어 차돌박이를 주문했다. “차돌박이는 기름기 있는 음식인데 김치와 함께 구워서 드시면 끝내줍니다. 고기의 느끼한 맛이 사라져요. 어서 드세요.”


▶국내 부동산시장의 전망은 어떤가요.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당분간 쉽지 않겠죠. 민간 부동산 경기가 워낙 나쁘니 …. 하지만 좋은 프로젝트들은 상황이 아무리 열악해도 잘 됩니다. 주변에서 재테크에 대해서도 가끔 묻습니다. ‘부동산으로 돈 버는 시대는 지났다는 생각을 많이들 하세요. 부동산은 입지라는 말이 있잖아요. 시장이 침체돼도 요지의 땅은 그 가치가 줄지 않아요. 갈수록 차별화가 심해진다는 이야기죠.”

▶건축 분야에도 한류가 가능할까요.

“드라마와 K팝을 앞세운 한류 열풍이 거세죠. 건축 분야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사람들이 건축물 속에 있어서 쉽게 못 느껴서 그렇지, 설계의 보이지 않는 파워는 대단합니다. 온돌은 영국 중국 등에서 인기가 높습니다. 지금까지는 발주처의 의견을 중시했지만 앞으로는 해외 프로젝트에도 한국적인 디자인을 가미할 생각입니다. 국내 설계업계의 맏형인 만큼 건축 한류도 주도해야죠.”

▶아쉬운 점이 있다면.

“국내에서 아직도 대규모 개발사업은 으레 외국인 건축가의 몫인 양 생각해요. 해외에서 동등하게 경쟁하면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수준인데 아직도 사대주의의 잔상이 남아 있어요. 건설사와 설계회사의 위상도 문제가 있습니다. 설계 도면대로 시공하는 건설사만 부각되고 설계자는 뒷전이죠. 우리나라의 설계비(총 공사비의 1~2%)는 미국과 유럽(5~6%)의 절반도 안 돼요. 그러다 보니까 우수한 인재들이 설계 쪽을 외면하고 기존 설계자들도 회의를 느끼고 떠나는 실정입니다. 이제는 훌륭한 건축물의 가치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정착돼야 할 때죠.”

▶앞으로의 목표는 뭔가요.

“세계적 설계업체인 겐슬러와 건설관리(CM)업체인 에이컴이 롤 모델입니다. 겐슬러는 설계와 CM만으로 8000억원, 에이컴은 설계, CM뿐만 아니라 시공까지 포함한 사업구조를 갖추고 5조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들 업체와 비교할 때 우리의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하지만 국내외 여건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매출 2000억원 달성 목표가 멀어졌습니다. 올해 해외 수주를 감안하면 내년에는 무난하게 매출 2000억원을 돌파할 것 같아요. 최근 방글라데시에서 국내 설계업체로는 처음으로 복합상업시설에 대한 설계·시공·감리 등을 987억원에 일괄 수주해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사업 영역과 해외 신규 시장 개척에 대한 질문에는 눈빛이 달라졌다. “앞으로는 부가가치가 높은 공항, 호텔, 병원 같은 특수 건축 설계 쪽에 역량을 쏟을 생각입니다. 중국 시장도 눈여겨보고 있어요. 과거에는 공사비가 싸고 수익이 적었지만 지금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왔어요. 중국은 앞으로 공항만 140여개를 건설할 계획을 세운 ‘개발왕국’입니다. 지난해 초에는 미국의 건축디자이너 피터 프란과 합작해 뉴욕에 건축사사무소 법인을 설립했어요. 지금은 미국의 경기가 좋지 않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된 만큼 미국 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입니다.”


◆ 정영균 사장의 단골집 예향…한식에 양식 접목한 숯불구이 등심스테이크 유명

서울 역삼동 경복아파트 사거리 스포월드 뒤편에 있는 ‘예향’은 남도음식 전문점이다. 한식과 양식을 접목한 숯불구이 등심 스테이크가 유명하고 고기와 곁들여 즐길 수 있는 와인도 준비돼 있다.

예향의 대표 메뉴인 숯불구이 꽃등심 스테이크는 두께가 3㎝에 가까운 큼직한 등심을 테이블 위 숯불에 적당히 구워 가위로 잘라 먹는다. 꽃등심 스테이크의 가격은 16만원이지만 양이 많아(400g) 두세 명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1인분만 주문하면 5만5000원.

묵은 김치와 함께 나오는 차돌박이도 별미다. 고기 요리 외에도 보리굴비, 고기전, 된장 등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술을 포함해 1인당 8만~10만원에 식사를 할 수 있다. 점심 세트 메뉴는 더 저렴하다.

예향은 6명이 앉을 수 있는 작은 방부터 10명이 넘게 들어가는 큰 방까지 모두 10개의 방으로 이뤄졌다. 고기 등 식재료를 신선하고 좋은 것만 사용한다고 한다. 사장이 매일 새벽에 직접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채소와 양념 재료 등을 구입한다. (02)566-0043

이현일/김진수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