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트코·비자코리아 사장 등 메뉴 못 외워 실수 연발 '머쓱'
수익금은 실직자 가정 기부…12년간 1800명에 100억 지원
제임스 딕슨 비자코리아 사장이 오늘의 코스 요리를 소개하다 머리를 긁적였다. “에이미, 그 메모지 어디서 났지? 누가 무슨 음식을 시켰는지 헷갈려요. 나도 한 장 줘요.”
옆 테이블에서 주문을 받던 팻 게인스 보잉코리아 사장은 에이미 잭슨 주한미국상공회의소 대표의 손에 들린 종이와 펜을 낚아챘다.
지난 5일 저녁 6시30분 서울 장충동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서울 크리스탈볼룸. 하얀 앞치마를 두른 ‘파란 눈’의 사장님들이 주문을 받느라 분주했다.
이들은 미국 정유회사 셰브론, 자산운용회사 피델리티, 보안업체 ADT, 유통회사 코스트코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주한미국상공회의소 미래의동반자재단이 주최한 ‘CEO 서버스 나이트’를 위해 일일 웨이터로 변신했다. 우리말로 바꾸면 ‘섬김의 밤’. CEO가 임직원을 초청해 서빙하고 식사, 와인판매로 얻은 수익금을 기부하는 행사다.
‘접대’를 받던 사장님들이 ‘대접’하려니 서툴 수밖에. 좌충우돌 실수연발이었다. 행사 한 시간 전 호텔리어에게 배운 응대예절, 서빙요령은 잊은 지 오래. 와인 흘리기는 기본, 잔에 채워진 양도 들쑥날쑥했다. 스테이크를 다 먹을 때쯤에야 겨자소스를 가져오는 식이었다.
문재식 JS홀딩스 회장의 초청으로 참석한 한 직원은 “완벽주의자인 줄 알았던 회장님의 허술한 모습을 보니 재미있다”며 “꾀를 피우시는 것 같아 일부러 주문을 많이 했다”며 웃었다.
짓궂은 손님에게는 미래의동반자재단 이사장인 제프리 존스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가 고가 와인을 ‘강권’했다. 그는 유창한 한국어로 “와인을 마셔야 기부를 많이 할 수 있다. 임신한 분만 알코올 면제!”라고 선언했다.
난생 처음 서빙을 해봤다는 프레스톤 드래퍼 코스트코 코리아 대표는 “미소와 애교로 실수에 대처하면서 봉사하는 법을 배웠다”고 뿌듯해 했다. 박찬구 페어차일드반도체 대표는 “신세를 졌던 직원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기부도 할 수 있어서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엔 외국계 회사 임직원 120명이 참석했다. 브래들리 벅월터스 ADT코리아 사장은 가장 많은 20명의 직원을 초청해 ‘최고의 호스트상’을 받았다. 초대받은 ADT코리아 전국 지점장들은 행사 시작 한 시간 전부터 자리를 메웠다. 식사 도중에도 여러 차례 ‘위하여’를 외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문재식 JS홀딩스 회장은 300만원어치의 와인을 판매해 베스트 와인셀러상을, 제임스 딕슨 비자코리아 사장이 가장 서빙을 잘한 웨이터로 뽑혀 인기상을 받았다. 미래의동반자재단은 올해로 8번째 이 행사를 열었고, 이날 모금한 수익금 약 3000만원도 실업가정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전달하기로 했다. 지난해까지 12년간 회원사 기부 등으로 100억원을 모아 1800여명을 지원했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는 팻 게인스 보잉코리아 사장은 “이 행사를 통해 한국에서 즐거운 기부문화를 확산시키겠다”고 강조했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