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전투.’ 6명의 젊은이들이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제2연평해전이 대한민국 국민들의 머리에서 희미해져간다. 국민들의 머릿속에선 잊혀져 가지만 그때의 상처를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유족들의 아픔은 갈수록 커진다.

한국경제신문은 6일 현충일을 맞아 제2연평해전 전사자인 고(故) 윤영하 소령의 부모 윤두호 씨(70) 황덕희 씨(66), 고 서후원 중사의 부모 서영석 씨(59) 김정숙 씨(56)와 5일 인터뷰를 가졌다.

전 국민이 월드컵축구 4강 진출에 들떠있던 2002년 6월29일.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수호하던 참수리357호 고속정은 북한 경비정의 기습 공격을 받았다. 30분간 교전 끝에 북한 경비정을 퇴각시켰지만 함장이던 윤 소령 등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당하는 피해를 입었다.

이달은 제2연평해전이 일어난 지 만 10년째다.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유가족들의 아픔은 여전했다. 인터뷰 내내 그들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참수리호 내연사(기관장)로 근무했던 서 중사의 부친 서영석 씨는 “지난 10년 동안 매일 피가 끓고 아들 생각만 했다”고 말했다. 서 중사 모친인 김정숙 씨는 인터뷰 도중 기자의 나이를 물었다. 기자는 서 중사와 동갑인 1980년생. “내 아들과 똑같네요. 우리 아들도 살아있었으면 이렇게….” 김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윤 소령의 부친 윤두호 씨는 아들을 마지막으로 본 순간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은 2002년 6월8일, 윤씨 본인의 생일이었다. 당시 평택 해군2함대를 찾은 아버지에게 윤 소령은 “생신 축하드립니다”라며 50만원이 든 봉투를 내밀었다. 아들에게 받은 처음이자 마지막 용돈이었다.

정작 자식들이 목숨바쳐 지키려고 했던 조국은 그들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햇볕정책’을 내세우며 남북화해를 외치던 김대중 정부 때부터 그들을 충분히 뒤돌아 보지 않았다며 유족들은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교전 이틀 후 열렸던 합동영결식 때는 대통령을 비롯해 군 수뇌부 대부분이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때도 비슷했다. 2007년엔 제2연평해전 추도식 자체를 없애자는 청와대의 요청이 있을 정도였다. “자식을 키우고 군에 보내서 조국을 지킨 게 죄가 됩니까.”

2008년 현 정부 들어 추모식은 국가보훈처 주관 국가행사로 격상됐고, 명칭도 ‘서해교전’에서 ‘제2연평해전’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유가족들의 마음에 남은 상처는 현재진행형이다.

“평양 가서 김일성 만세를 외친 임수경과 종북주의자들은 지금 국회의원이 돼 떵떵거리고 있더군요. 그렇다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총들고 싸운 내 아들은 뭐가 됩니까.” 서씨는 “이석기, 김재연이라는 종북주의자들이 왜 대한민국에 사는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대한민국의 ‘안보’ 교육은 ‘안 보이는’ 교육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예요. 어떻게 조국이 이럴 수 있습니까.”

유가족들은 10년간 아들을 잊지 않은 일부 국민들에게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들은 단 한 가지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10년간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추도식에 온 적이 없습니다. 군과 청와대에 거듭 부탁했지만 효과가 없었습니다. 왜일까요?” 그들은 10년간 ‘왜’라는 질문을 속으로만 수백 번 되뇌었다고 했다. 기자도 대답할 수 없었다.

10년간 어떻게 지냈나…유족들 '전사한 아들' 이름으로 서로 부르며 가족애 나눠

2002년 6월29일 제2연평해전 당시 전사자는 고속정 참수리357호의 함장이던 고(故) 윤영하 소령을 비롯해 한상국 중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등 6명이다. 이들은 전사 후 1계급씩 특진했다.

한 중사의 시신은 침몰된 참수리호에서 실종된 지 41일 만에 발견됐다. 의무병이던 박 병장은 총탄과 포탄을 맞고 84일 동안 병상에서 고통받다 숨을 거뒀다. 전사자 6명은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서 합동 영결식을 가진 후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유가족들은 2002년부터 매년 10차례가 넘는 모임을 가지는 등 인연을 이어왔다. 연평해전이 발생했던 6월에 자주 모인다. 모임의 총무 역할은 서 중사의 부친인 서영석 씨가 맡고 있다.

이들은 만날 때 서로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전사한 아들 이름으로 서로를 부른다. 기자와의 인터뷰 도중 윤두호 씨(윤 소령 부친)는 서후원 중사의 부친인 서영석 씨에게 ‘후원아’라고 불렀다. 윤씨는 “아들을 잃은 아픔을 공유하고 있어 이제는 유가족들이 모두 가족이 됐다”고 말했다.

제2연평해전 유가족들은 5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오찬을 가졌다. 현충일인 6일엔 대전의 아들들의 묘역을 방문할 예정이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