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과 기업이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담보로 제공하는 부동산에 대해 은행이 자체적으로 담보물 가치를 평가하는 것을 두고 금융위원회와 한국감정평가협회가 갈등을 빚고 있다.

금융위의 ‘은행업감독규정’ 개정안에 포함된 담보물평가 제도 개선 조항이 오히려 은행의 자체 담보물 감정평가를 전면적으로 허용하고 있다며 3300여명의 회원을 둔 감정평가협회가 보완·수정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29일 금융업계 등에 따르면 금융위는 지난 7일 담보물평가제도 개선 방안을 담은 ‘은행업감독규정’ 변경예고안을 공고하고 내달 16일까지 업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이 개정안에는 은행이 여신거래와 관련, 담보물을 평가할 때 차주(대출자) 또는 제3자가 제공한 담보물을 최초로 평가하고 이들이 요청하면 ‘부동산 가격공시 및 감정평가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이를 외부 감정평가법인에 의뢰해야 한다는 조항이 담겼다.

그러나 △차주가 자체평가에 동의하거나 △객관적인 시세자료가 있는 경우 △감정평가법인의 예상감정가 등 객관적인 외부 예상감정가액이 20억원 이하인 경우 등에는 은행이 자체감정평가를 할 수 있도록 예외조항을 뒀다.

또 금융위는 개정안에서 자체평가를 위한 은행 내부 조직의 구성 조건도 신설했다.

이에 감정평가업계는 은행이 무분별하게 내부 감정평가를 늘릴 것이라며 개정안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반면 한 금융사 관계자는 “작년 7월 공정거래위원회가 근저당권 설정비용을 은행이 부담하도록 표준약관을 고치면서 금융사들도 담보감정평가수수료 부담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준옥 감정평가협회 기획이사는 “대출기관인 은행과 담보평가기관인 감정평가협회 사이의 견제와 균형 원리가 작동돼야 한다”며 “채권을 쉽게 회수하기 위해 은행이 담보물건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등의 부작용을 막으려면 은행의 영업방침과 상관없이 외부 전문가들이 담보평가를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는 또 “20억원 이하의 부동산은 국민 전체 소유 부동산 가운데 98.9%(2006년 기준)를 차지하고, 지난해 담보감정평가물건 15만3000건 중에서도 90%(13만9000건)에 이른다”며 “개인, 중·소상공인, 소기업 등의 담보 감정평가를 사실상 은행에 전면 허용하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각 은행의 10년치 자료를 분석하면 은행의 자체평가 비율은 이미 35%에 달한다”며 “관련 규정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은행의 무분별한 자체평가를 막고, 객관성과 공정성을 높이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박병우 감정평가협회 정책연구 이사는 “미국의 경우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 이후 대출기관과 감정평가사 간에 절대적 독립성을 강조하면서 은행의 자체감정 조건을 한층 까다롭게 제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