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ㆍ스페인 '부실 국채'로 은행 살리나?
재정 위기에 빠진 그리스와 스페인이 자국 은행들을 살리기 위해 국채를 담보로 급전을 구하는 비상카드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이런 조치가 자칫 공적자금만 계속 집어삼키는 ‘좀비(움직이는 시체) 은행’을 양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독일 경제일간 한델스블라트는 28일 “그리스 정부가 유럽중앙은행(ECB)이 유동성 지원을 중단했던 그리스 4개 시중은행에 180억유로 규모 국채를 공급했다”고 보도했다.

그리스 정부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재정위기 대응기금인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지원 자금으로 국채를 사들여 이를 다시 시중은행에 유동성 확보 담보로 제공한 것. 내셔널뱅크 등 그리스 은행들은 이 국채를 담보로 ECB로부터 자금을 빌릴 계획이다. 국채 규모는 내셔널뱅크가 69억유로로 가장 많고, 피레우스뱅크 50억유로, 유로뱅크 42억유로, 알파뱅크 19억유로 등이다. 이 은행들은 현재 자금이 거의 고갈된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외신들은 스페인도 그리스와 유사한 방법으로 자국 은행 지원에 나설 것으로 예상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익명의 스페인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 “스페인 정부가 3위 은행 방키아에 국채를 지원해 이를 담보로 ECB로부터 자금을 수혈받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스페인 정부는 방키아에 190억유로 규모 공적자금 투입계획을 발표하며 진화에 나섰다. 스페인 정부는 앞서 45억유로를 들여 방키아 지분 45%를 인수하는 부분국유화 조치를 단행했지만 시장 불안이 가시지 않자 추가 조치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스페인 정부가 ‘그리스식 돌려막기’로 은행 구제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커지면서 금융시장의 불안이 증폭됐다. 이날 스페인 10년물 국채 금리는 연 6.47%로 올 들어 최고치를 기록했다. 안전자산인 독일국채와 금리 차이는 5.11%포인트로 1999년 유로존 창설 이후 최대로 벌어졌다.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는 “방키아가 무너지면 스페인도 무너질 수 있다”며 “어떤 지방정부도, 은행도 쓰러지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은행 위기로 유럽연합(EU)에 구제금융 지원을 요청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시장의 의혹을 반박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라호이 총리의 발언은 ECB에 스페인 국채 매입을 촉구한 것”이라고 해석했고, 파이낸셜타임스는 “스페인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선 외부 지원이 불가피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