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다 해도 취업할 거예요. 대학에 가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는 없어요. 정말 잘 선택한 것 같아요.”

이제 갓 스무 살(만 19세)인 두 젊은이는 당찼다.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올 1월 SK커뮤니케이션즈에 고졸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이상현·김민정(여) 씨는 행복해 보였다. 인터뷰는 취업을 준비 중인 서울 선린인터넷고 3학년 강성필 군, 하예진 양과 함께 진행했다. 후배들의 진지한 질문과 선배들의 애정 어린 답변, 그리고 고교 시절 추억담으로 시종일관 밝고 유쾌한 시간이었다. 지난 25일 서울 미근동 SK컴즈 본사에서 오후 2시40분부터 시작된 이야기 꽃은 오후 6시를 넘어서야 끝났다.

▷대학에 대한 후회는 없나요.

(이상현)“고교 입학 때부터 취업을 생각했어요. 그래서 중앙대 컴퓨터공학과에 수시합격했지만 망설이지 않았어요.”

(김민정)“오히려 대학에 간 애들이 절 부러워해요. ‘넌 돈벌어서 좋겠다고…’ 친구들이 맛있는 거 사달라고 자꾸 달라붙어요.ㅋㅋ”

▷첫 월급 타서 뭐했어요.


(이)“부모님께는 등산화 사드렸어요. 아버지도 처음엔 ‘대학 가지 왜…’라고 말씀하셨지만 결국엔 ‘잘하라’며 격려해 주셨어요.”

(김)“친구에게 시푸드 뷔페로 한턱 내고 부모님께는 지갑 사드리고 선생님도 찾아뵀죠.”

▷왜 취업을 생각했지요.

(김)“고1 때까지도 진학을 생각했어요. 그런데 고2 때 취업한 선배들이 와서 회사생활을 얘기하는데 너무 부러웠어요. 그후에도 쭉 선배랑 연락하면서 멘토링을 받았지요.”

(이)“우연히 얻은 SK플래닛 웹경진대회로 입사하게 됐어요. 고교 후배 2명이 아이디어를 냈는데 갑자기 못한다는 거예요. 할 수 없이 제가 떠맡았죠. 남은 시간은 단 3주. 1주는 공부하고 2주 동안 밤을 새우면서 개발했어요. T스토어의 ‘폴더’게임이 제것입니다 (이씨는 이 대회에서 2등을 해 입사 제의를 받았다).”

울산애니원고 컴퓨터게임개발과를 졸업한 이씨는 현재 SK컴즈에서 소셜콘텐츠 개발을 하고 있다. 초등학교 때 게임에 관심이 많아 이해는 안 됐지만 혼자 C언어를 보면서 공부했다. 세계 인디게임 공모전 파이널 리스트, KWC 웹콘테스트 금상 등 고교 때 수상경력만 여섯 가지였다.

SK컴즈 인프라개발팀에서 일하는 김씨는 서울 미림마이스터고 인터렉티브미디어과를 나왔다. 세무-전산회계 등 자격증만 6개. 고교 때 선생님의 DB실습 조교를 하면서 C, 자바 등 각종 프로그램밍 언어를 자세히 배웠다. 지금은 고객센터 파트에서 자바언어로 바꾸는 컨버팅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올 1월 함께 입사한 SK컴즈 고졸 동기는 6명.

▷고등학교 다닐 때 재밌었나요.

(이)“고2 때 인디게임 공모전 출품작을 학교 기숙사 주차장에서 만들었어요. 오후 10시가 되면 기숙사 불을 다 꺼야 해 할 수 없이 지하주차장에서 벌벌 떨면서 친구들과 게임을 만들었지요. 바닥엔 돗자리를 깔고…춥기는 또 얼마나 춥던지…. 다행히 공모전에서 상금으로 100만원을 받아 고생한 보람이 있었어요.”

▷회사에서도 그렇게 밤새워 일하나요.

(김)“아침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면 퇴근해요. 업무시간에 안 놀면 그날 분량은 다해요. 때론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독서실에 공부하러 갈 때도 있어요.”

(이)“홍대 근처에서 자취를 하는데 거의 매일 새벽 2시까지 책을 봐요. 영어소설도 읽고 수학문제도 풀고… 게임개발자는 수학을 잘해야 해요. 그래서 고교 때도 정석수학을 옆에 두고 게임을 만들었어요.”

▷대학은 안 가고 싶나요.

(김)“너무 길이 많아 고민이에요. 야간대학을 다닐 수도 있고 산업체 특별전형으로 가고 싶기도 해요. 방송대를 다녀도 되잖아요?”

(이)“대학을 가긴 갈 건데 방법은 아직 모르겠어요. 게임 분야의 박사가 되고 싶어요.”

▷(하예진) 신입사원의 자세는 뭔가요.

(김)“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해요. 선배들이 뭘 하자고 하면 ‘예,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먼저 나서세요. 신입이라 당연히 실수를 하죠. 오히려 실수가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어요.”

▷(강성필) 지금 하는 일이 고교 때 배운 것으로 커버가 되나요.

(김)“팀프로젝트를 해 봤느냐가 중요해요. 프로젝트를 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을 배우게 되잖아요. 회사에서도 기획자와 개발자 사이의 의견 조율이 중요해요. 공모전 참가는 정말 강추, 강추.”

▷(강) 팀원 간 갈등이 생기면 힘든데….

(김)“친구랑 싸웠군요. 화해해요. 졸업할 때 ‘미안했다’고 편지 한 장 써요. 인터넷 포털기업은 이리저리 자리 옮겨도 다시 만나게 돼 있어요. 그때 만나서 또 얼굴 붉히면 안 되잖아요.”

(이)“기획자는 더 넣자고 하고 개발자는 일정이 빡빡해 안 된다고 하니 힘들죠. 소통법을 알면 나중에 회사생활도 쉬워져요.”

김민정 씨는 ‘초등학교 때 왜 놀기만 했을까’라며 후회했다. 다시 초등학생이 된다면 책만 읽고 싶다고 했다. 또 중학교 때 만난 친구와 지금도 속마음을 터 놓고 지낸다며 학창 시절에 평생친구를 많이 사귈 것을 당부했다. 입사 후엔 선배와 나이 차가 나서 친구가 되는 게 힘든 것 같다고. 이상현 씨는 ‘잡스가 아이폰 신화를 만든 것은 인문학적 교양 때문이었다’며 “대학을 간다면 인문소양을 쌓기 위해 가고 싶다”고 말했다.

▷(하)SK컴즈만의 강점은 뭐죠.

(김)“자유로워요. 회사 슬로건이 ‘놀이터 같은 회사’예요. 선배들도 성격이 매우 좋아요. 모르면 친절하게 가르쳐 주고… 3층 카페 커피도 얼마나 맛있는데요.”

▷(강)회사에 빨리 적응하신 것 같아요.

(이)“선배가 24세부터 시작해 쭉 위로 있어요. 모두 젊어 거리낌이 없어요. 1993년생이 온다고 했는데 대리님이 93학번으로 착각하기도 하셨죠.ㅋㅋ”

(김)“저도 비슷한 일을 겪었어요. 팀원이 20명인데, 한번은 팀장님이 ‘1988년도에 뭐했지’라고 묻는 거예요. 저는 ‘태어나기 전이었는데요’라고 했더니 웃으시더라고요. 하~하~하.”

▷(강)IT는 3D업종이라 들었는데.

(이)“젊은 사람이 많다 보니 대학교 같아요. 점심 땐 기타치고 노래하고… 동호회 활동도 많고 이벤트도 엄청나요(매년 두 차례 극장을 통째로 빌려 전 직원이 함께 영화를 보고 3년마다 2주 휴가를 준다. 소통을 중시하는 이주식 대표는 전 직원과 개별 비전토크를 갖는다).”

(김)“복장도 자유롭죠. 청바지에 짧은 치마도 OK! 정장 입고 오면 오히려 ‘너 면접보고 왔냐’ 그래요. 양복입으면 되레 이상해요.”

이 젊은이들의 꿈은 뭘까 궁금했다. 이상현 씨는 “게임세계에서 큰 사람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돈을 많이 벌기보다 내가 진정 하고 싶은 게임 개발을 맘껏 해 회사에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단다. 그래서 그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더 공부하기 위해 요즘도 새벽 2시까지 책을 본다고….

남자가 대다수인 프로그래머 세계에 여성으로서 이름을 남기고 싶다는 김민정 씨는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아요. 웹언어·네트워크·보안…. 심지어 관련 법도 알아야 하잖아요. 열심히 공부해 꼭 유능한 여성 개발자가 될 겁니다. 그때 인터뷰하러 오실 거죠?”라며 환하게 웃었다.

공태윤 기자 tru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