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아토피 피부염으로 울며 보채는 아이를 둔 부모는 밤새 한 잠도 못 자기 일쑤다. 잠만 설치랴. 여리디 여린 피부를 밤낮 없이 긁어대 온통 곪고 짓무른 모습을 바라봐야 하는 마음은 찢어진다. 고통스럽긴 천식도 마찬가지다.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듯 콜록거리는 아이를 어르노라면 당장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는 죄책감에 가슴이 무너진다. 아토피와 천식 때문에 약을 오래 먹으면 성조숙증으로 키가 제대로 자라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들으면 눈앞이 캄캄해질 따름이다.

영유아 둘 중 하나가 아토피 피부염에 시달리고, 13~18세 청소년 9.2%가 천식, 33.9%가 알레르기 비염으로 고생한다는데도 이들 알레르기 질환의 명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아토피의 경우 11번 염색체에 유전적 소인이 있고, 알레르기는 집먼지진드기, 꽃가루, 음식물, 화학물질 등 다양한 요소에 의해 발생한다지만 이유와 치료법 모두 불확실한 상태다.

게다가 국내의 보건산업 기술 조사에서 알레르기 질환은 궁극기술 대비 격차가 16.9년으로 다른 질환에 비해 현저하게 낮게 나타났다는 마당이다. 봄철 알레르기로 고생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세계 각국, 특히 도시에서 알레르기 같은 만성 염증 질환이 증가하는 것은 생물 다양성이 줄어든 까닭이란 연구결과가 나왔다.

핀란드 헬싱키대 생명과학부 일카 한스키 박사가 조사분석했더니 다양한 생물과 접촉할 수 있는 자연과 멀어질수록 피부에 서식하는 공생균이 줄어들면서 알레르기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더란 것이다. 어린 시절 흙 속에서 뒹굴던 과거엔 드물던 아토피가 아파트 아이들 사이에서 왜 자꾸 늘어나는지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지구상 생물은 매일 30~300종씩 감소, 2050년께엔 4분의 1이 사라질 것이라고 하거니와 국내 역시 2005년 221종이던 멸종위기 동식물이 지난해 말 245종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문제는 그런데도 생물다양성 감소는 쉽게 체감되지 않는다는 것. ‘조용한 쓰나미’란 말이 생겨난 것도 그 때문이다.

앨 고어 전(前) 미국 부통령은 ‘위기의 지구’에서 이렇게 말했다. ‘유전자 조작작물은 언제든 변종에게 공격받을 수 있다. 재빨리 진화하는 병충해를 막기 위해선 자연에서 숱한 적과의 격전을 이겨낸 야생 식물을 찾아 강하고 활력있는 유전자를 보급받아야 한다.’ 다양성 보전이야말로 모든 생존과 발전의 근간이란 얘기다.

다양성을 인정하긴커녕 내편이면 무조건 선, 아니면 죄다 악이라며 거부하고 비판하는 정치권의 앞날은 과연 어떻게 될까.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