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폐막된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에서는 함께 열린 수많은 세미나와 회의 등을 통해 다양한 논의의 장이 펼쳐졌다.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는 개막식에서 앞으로 아시아 지역의 성장을 위한 세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바로 포용적 성장, 녹색 성장, 그리고 지식기반 성장이라는 원칙이다. 흥미로운 것은 포용적 성장이 가장 먼저 제시됐다는 점이다.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성장의 과실을 나누면서 가자는 화두가 가장 중요한 주제로 제시된 셈이다. 예를 들어 금융포용(financial inclusion)의 개념도 중요시됐는데 이는 금융서비스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서비스 대상으로 포함시키자는 주장이다. 필리핀만 해도 은행계좌를 가진 사람이 25% 정도밖에 안 되는데 이를 위해 모바일 뱅킹의 확산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은행계좌를 가진 사람보다 휴대폰을 가진 사람이 훨씬 많은 상황에서 휴대폰을 이용한 모바일 뱅킹을 확산시킬 경우 그 효과가 상당하리라는 것이다. 송금 서비스 하나만 잘 제공돼도 상황이 훨씬 나아지리라는 언급을 들으며 금융서비스가 너무 많이 제공돼 문제가 되고 있는 나라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중진국 함정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다양하게 표출됐다. 후진국이 중진국으로 도약하고 다시 선진국으로 발전해가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어려운 것이 두 번째 단계다. 자본과 노동 등 생산요소를 잘 동원하고 활용하는 하드웨어적 전략만으로도 중진국까지의 발전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 하지만 선진국으로의 도약은 연구개발과 다양한 사회적 제도의 선진화 등을 포함한 소프트웨어의 변화와 개선 전략이 필요한데 이 부분은 첫 단계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어렵다. 결국 구로다 총재가 지적한 지식기반 성장이 효과적으로 집행되지 못하면 중진국 함정에 갇혀버리는 상황이 나타나는 것이다.

또 다른 화두는 역내 지역 금융안정망이었다. 한·중·일 3국은 국채투자정보를 공유하면서 금융안정을 달성하기 위해 ‘국채투자 프레임워크’을 만들기로 했고 ‘아세안+3’ 국가들은 역내금융안정기금에 해당하는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CMIM)’의 재원을 1200억달러에서 2400억달러까지 두 배로 증액하는 데 합의했다. 위기를 당할 경우 사용할 수 있는 재원이 전체적으로 두 배로 늘어나는 셈이다.

또한 지금부터는 위기가 발생하지는 않았더라도 위기 징후가 있는 국가에 대해서까지도 예방프로그램이 작동하게 된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예방프로그램보다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집행됨으로써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아시아 채권시장 이니셔티브(ABMI)에 대해 ‘뉴 로드맵 플러스’를 채택하기로 한 것도 눈에 띄는 성과였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IMF에 대한 비판 분위기가 고조됐다는 점이다. 회기 끝 무렵에 개최된 한 세미나에서 몇몇 참석자들은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IMF의 조치에 대한 유감을 밝히면서 아시아 통화기금(AMF)의 설립을 역설했다. 잘나가던 선진국들에서 금융위기와 재정위기가 발생하면서 이들이 주도하는 구조조정에 대한 문제점이 제시되고 역설적으로 이로부터 자신감을 얻은 아시아 국가들이 과거의 질서를 거부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모습 속에서 세계 경제 전쟁에서 영원한 승자는 절대로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포용의 화두, 안정망 구축, 중진국 함정 극복, IMF 비판 등 다양한 주제들이 오가는 분위기 속에서 문득 우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수많은 국가들이 도약을 꿈꾸며 타국과의 다양한 협력을 통해 생존경쟁의 장에서 처절한 몸부림을 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우리에게도 이런 절실함이 존재하는지, 우리의 현 상황에 맞는 진정한 ‘그랜드 플랜’이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우리에게 포용도 안정망도 아직 부족한데도 우물안 개구리처럼 그동안 이뤄낸 것에 만족하면서 우물이라는 ‘함정’을 빠져 나가 미래를 향한 도약을 해야겠다는 의지마저 박약해진 것은 아닌가라는 걱정스러운 생각도 스쳤다. 우리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었지만 가슴 한편은 여전히 무거운 느낌이었다.

윤창현 < 한국금융연구원장 yun3333@para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