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네덜란드 풍속화가 얀 스테인은 개를 그리는 작가로 유명하다. 개를 통해 팍팍한 서민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 것. 서울 서초동 갤러리 마노에서 10일부터 25일까지 개인전을 펼치는 서양화가 조원강 씨(53)도 현대인의 소외감을 개를 통해 부각시키고 있다.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활동하는 조씨는 “개는 동물 중에서도 인간과 유대감이 가장 좋아 가족과 같은 존재로 받아들여진다”며 “맨해튼 거리를 산책하면서 만난 개들의 모습에 매료돼 이를 화면에 담았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에는 코카 스패니얼을 비롯해 슈나우저, 닥스훈트, 도베르만, 하운드, 불독 등 다채로운 개들이 등장한다. 개들은 전방을 주시하며 걸어가거나 냄새를 킁킁 맡으면서 주인을 기다리고 뒤를 돌아보는 모습을 하고 있다.

홍익대 미대를 졸업하고 1994년 뉴욕으로 건너간 그는 소통이 단절된 현대인들에 주목하며 개에 관심을 가졌다. 1998년에는 뉴욕에서 개인전을 갖고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는 “개는 현대인의 내면 속에 깊이 배어든 관계의 열망을 자극한다”고 말했다. “헨리 나우엔은 현대인을 ‘핵인간’이라고 불렀습니다. 기능과 효율성에서는 뛰어나지만 이웃과 잘 섞이지 못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죠.”

그가 개를 바라보는 시각은 색다르다. 그의 작품에는 행인들의 하반신과 개만 등장한다. 인물이나 배경을 세밀하게 드러내지 않고 모호하게 처리함으로써 소외와 고독, 상실 등을 표현한 것이다. 개를 위주로 그리다보니 어쩔 수 없는 구도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상반신을 없앤다는 것은 인종과 피부에 상관없이 인간을 이해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인체를 그릴 때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은 편견없는 사회입니다. 모두가 평등하며 각자 제 갈 길을 가는 사람들로 묘사하고 싶었거든요. 개의 눈에서 볼 때도 주인이 백인인지 흑인인지는 중요하지 않을 겁니다.”

그의 작품이 사진 예술과 회화를 융합한 ‘포토리얼리즘’을 표방한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가령 사람의 발걸음은 초점이 맞지 않은 것처럼 뿌옇게 처리하는데 셔터가 빨리 닫혀 피사체를 찍지 못할 때 생기는 현상을 응용한 것이다.

“강아지가 저를 위해 참을성 있게 같은 동작을 취할 가능성은 극히 적기 때문에 카메라로 표정을 포착합니다. 화면의 자연스런 움직임을 살리는 데 좋은 회화적 도구라고 생각하죠.”

요즘은 ‘소통을 일깨우는 것이 가장 현대적인 것’이란 화두로 자신에게 주문을 걸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관람객과 소통하는 개 그림 20여점을 선보인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