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에서 탈퇴할 가능성이 75%로 높아졌다."

6일(현지시간) 그리스 총선 결과에 대한 씨티증권의 진단이다. 긴축정책과 구제금융 협상을 주도한 연립정부가 참패하고 새로운 연립정부 구성도 난항에 빠졌기 때문이다. 제1당은 하루 만에 연립정부 구성을 포기했다. 자칫하면 선거를 다시 치를 가능성도 있다. 그리스 내에서 긴축반대 여론이 확산되자 유럽연합(EU)은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리스가 구제금융 지원 조건으로 약속한 긴축정책을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 혼란의 결과는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로 이어질 것이란 경고다.

◆그리스, 선거 다시 치르나

그리스는 총선을 치렀지만 연립정부 구성조차 불투명하다.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한 제1당 신민당은 연정 구성에 나섰지만 단 하루 만에 실패를 선언했다. 연정을 구성할 수 있는 기한인 사흘도 다 채우지 않고 손을 들어버린 것. 안토니스 사마라스 당수는 황금새벽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에 연정 구성을 제안했지만 거부당했다.

신민당이 포기하자 연정 구성 권한은 제2당인 시리자(급진좌파연합)로 넘어갔다. 시리자는 긴축정책과 구제금융에 반대해온 정당이다. 시리자가 연립정부 구성에 성공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시리자가 사흘 이내에 연정을 만들지 못하면 정부 구성권은 제3당인 사회당으로 넘어간다. 17일까지 연정 구성에 실패하면 그리스는 6월 초 또다시 총선을 치르게 된다. 적어도 한 달간 그리스 정국은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혼란에 빠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긴축불이행→유로존 탈퇴?

이 같은 정치적 혼란의 결과는 결국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정국혼란은 긴축약속 불이행, 구제금융 지원 중단으로 이어지고 결국 드라크마(그리스 예전 통화)가 부활할 것이란 얘기다.

실제 그리스 정부가 긴축정책을 계속 이행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신민주당·사회당 연정은 지난 2월 EU와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1300억유로의 2차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공무원 15만명 감원과 최저임금 20% 삭감 등의 재정긴축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를 통해 국민들은 긴축에 반대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줬다. 연정을 구성한 정당들이 긴축반대 여론에 밀려 참패한 것이다. 긴축에 반대하는 야당에 대한 지지율은 60%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어렵게 연정을 구성한다해도 긴축정책을 밀어붙이기 힘든 이유다.

이에 따라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경고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 씨티증권은 “1년~1년6개월 이내에 그리시트가 현실화될 확률이 기존 50%에서 최고 75%로 높아졌다”고 진단했다. ‘그리시트’는 Greece와 exit의 합성어로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일컫는 말이다. 씨티증권은 “그리스 정부가 긴축정책을 이행할 가능성이 낮아짐에 따라 구제금융 집행이 중단될 위험이 높아졌다”고 진단했다. 당장 2분기 예정된 313억유로의 구제금융 집행이 지연돼 재정이 바닥날 수 있다는 것이다. 골드만삭스도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

긴축반대 여론이 확산되자 EU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구제금융 집행을 중단할 수 있다며 그리스를 압박하고 나섰다. EU집행위원회 대변인은 이날 “그리스 새 정부가 경제와 국익을 위해 이미 약속한 사항들을 존중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탈퇴 파장 크지 않다’ 전망도

일각에서는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해도 그 파장이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그리스 채무탕감 협상이 마무리됨에 따라 유로존 은행 등 금융권이 보유하고 있는 그리스 채권 규모가 작아졌다”며 “유로존에서 탈퇴해도 큰 영향을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도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이 금융시장 붕괴를 초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재정위기국의 도미노 탈퇴다. 그리스에 이어 포르투갈, 스페인 등 재정위기국이 잇달아 유로존을 탈퇴하면 유로존이 붕괴될 것이란 우려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지적이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