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정이현 씨(40)와 스위스 출신 영국 작가 알랭 드 보통(46)이 사랑과 결혼에 관한 공동기획 소설 《사랑의 기초》(전2권, 톨 펴냄)를 펴냈다.

《달콤한 나의 도시》로 유명한 정씨는 젊은층이 그 이름만으로 작품을 선택하는 몇 안되는 작가 중 한 명이고, 보통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등으로 알려진 세계적인 작가다. 두 사람 모두 ‘사랑’에 대해서라면 일가견이 있다. 이번 작품이 출간 전부터 화제를 모은 것도 이 때문이다. 둘은 2년 전 출판사의 제안으로 공동작업을 시작했다. 7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정씨를 만났다.

《사랑의 기초》는 정씨의 ‘연인들’과 보통의 ‘한 남자’로 구성됐다. 두 소설은 각각의 완결된 스토리를 가진 경장편이다.

‘연인들’은 서울에 사는 20대 후반 연인 준호와 민아 이야기. ‘별은 높이 반짝이고 봄꽃들이 뿜어내는 향내가 아스라한’ 봄밤, 두 사람은 곧 서로를 운명이라 믿는다. 그러나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건 곧 닥쳐올 사랑의 필연적 어둠이다. ‘연애의 초반부가 둘이 얼마나 똑같은지에 대해 열심히 감탄하는 시간이라면, 중반부는 그것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를 깨달아가는 시간’인 것이다.

하지만 소설은 또 말한다. ‘허공에서 포개졌던 한 순간이 기적이 아니었다고는 말할 수 없으리라’고, ‘세상 밖으로 사라질 수 없다면 언젠가는 눈물을 그치고 고개를 들어야 한다’고.

정씨는 지난해 9월 보통과 가진 대담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전적인’ 존재가 되어줄 수 있으리라고 착각하는 ‘자발적 오독’이 낭만적 사랑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연인들’의 주인공은 이 같은 인식 때문에 이별로 이끌려간다. 그러나 작품에 그려진 사랑은 결과와 관계 없이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낭만적이다.

“순간과 찰나가 모여 사랑이 된다고 생각해요. 비록 ‘오독’이라 하더라도 자발적으로 상대를 ‘읽었고’ 충분히 닿았던 관계라면 그 자체로 의미있는 것 아닐까요. 이 소설을 냉소적으로 보기보단 낭만적으로 봐주시길 바라는 마음이 큽니다.”

정씨는 “주인공인 준호와 민아를 예뻐하면서 소설을 썼다”며 “쓰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이번 작품은 제가 사랑에 빠진 듯 행복하게 쓴 것 같다”고 말했다.

곳곳에 나타나는 홍대입구역 등의 고유명사도 서울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장치로 작용한다. 그는 “고유명사를 통해 붕 뜬 인물이 아니라 서울이라는 도시에 발붙이고 사는 구체적인 우리를 그리고 싶었다”며 “이건 문학을 시작할 때 가졌던 마음가짐”이라고 했다.

그는 이 작품을 자신의 ‘잠정적’ 마지막 연애소설이라고 했다. “당분간 연애소설은 쓰지 않을 생각이에요. 그만큼 이 작품에 제 감정을 다 쏟아부은 느낌입니다.” 그의 다음 작품은 1990년대를 살아가는 소녀의 성장소설이다.

‘한 남자’는 런던에 사는 30대 남자 벤의 결혼에 대한 기대와 실망을 다룬 작품이다. ‘연인들’이 결혼이나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는 커플을 그렸다면, 이 소설은 결혼으로 완성된 사랑이 일상에서 어떻게 변해가는가를 현실적으로 담아냈다.

이 작품의 ‘첫 독자’인 정씨는 ‘판도라의 상자’라고 평했다. “낭만적 사랑의 영속성을 굳게 믿는다면 이 소설의 첫 페이지를 열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진실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하면 된다.”

하지만 정씨의 주인공들이 그렇듯 벤도 현실의 남루함을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지극히 평범한 삶이라는 엄청나게 어려운 과제를 그럭저럭 계속해나가는 단순한 일. 이것이 진짜 용기이며 영웅주의”라고 그는 말한다.

“‘연인들’의 사랑은 이별로 끝나지만 벤은 다시 아내와 가족을 이끌고 잘 살아보려고 결심해요. 그것이 바로 연애와 결혼의 차이 아닐까요? ‘한 남자’는 적확하게 결혼이란 무엇인가를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정씨의 말이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