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석에서 만난 서울시 고위 공무원은 기자에게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줬다. 지난달 보도자료와 공식 브리핑을 통해 발표한 ‘창조전문인력 3000명 양성’에 관한 내용이었다. 발표 당시 담당과장은 “시 예산 91억원이 투입되는 이 사업은 서울시가 ‘처음으로’ 추진하는 획기적인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고위 공무원의 얘기는 달랐다. 그는 “창조전문인력 양성방안은 이전부터 진행돼온 정책의 이름만 바꾼 사업”이라며 “이미 추진해온 몇몇 관련 정책들을 합쳐서 내놓은 사업”이라고 털어놨다. 전임 시장이 강조했던 ‘창의인력양성 사업’에서 ‘창의’를 ‘창조’로 제목을 바꿨다는 것이다. 이유가 뭘까. 이 관계자는 “창조전문인력은 박원순 시장이 선거 때부터 내걸었던 핵심공약”이라며 “실무자들도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정책인 것처럼 기존 정책을 짜깁기해 만들고 발표해야 하는 부담이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기존 정책 짜깁기는 이 뿐만이 아니다. 시가 최근 공식 브리핑을 통해 발표한 ‘사회적기업’ ‘가로변 버스정류장 개선 사업’ 등도 박 시장 취임 이전부터 추진해온 정책이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따지고 보면 박 시장의 핵심 공약사업인 ‘마을공동체 사업’에도 과거 시 문화관광디자인본부가 추진했던 정책들이 상당부분 그대로 포함돼 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시 대변인실이 “기존 정책들을 이리저리 짜깁기한 재탕삼탕 보도자료를 내놓지 말라”고 담당부서에 경고했을 정도다. 박 시장도 이런 이유로 특정 부서 담당자를 불러 호되게 질책했다는 후문도 들렸다. 달리 보면 수도 서울의 시정은 시장이 바뀌었다고 일거에 모든 것이 바뀔 수 없는 게 현실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의 상당수 부서에선 전임 시장의 정책이라면 무조건 배척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최근의 지하철 9호선 요금인상 논란과 관련, 담당부서인 도시교통본부 측이 “과거 계약을 책임졌던 담당자들의 잘못”이라고 떠넘긴 게 그런 예다. 특혜로비 의혹에 휩싸인 양재동 복합물류센터(파이시티)를 바라보는 현직들의 반응도 비슷하다.

전임 집행부의 정책 가운데 계승할 것, 인정할 것까지 애써 부인하는 모습은 좋게 보이지 않는다. 기존 정책을 다 뒤집고 비난하는 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강경민 지식사회부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