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전화를 받는 아내의 목소리가 예전과 같지 않다. 남편이 묻는다. “누구야?” 아내는 “애들 선생님”이라고 답한다. “이상하게 여성스런 말투던데?”라는 남편의 질문에 아내는 화를 내며 “나 여자 맞자나!”라고 대답한다. 최근 유행하는 불륜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풍경이다.
드라마 '아내의 자격'은 최근 대치동 엄마들의 안방을 접수했으며, '내 남자의 여자', 영화 '간기남', '내 아내의 모든 것' 역시 눈길을 끌고 있다. 사람들은 바람난 부부를 소재로 한 이야기가 사회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말한다. 또한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지적한다. 어찌됐건 시청자들로 하여금 ‘과연 내 마누라는?’, ‘혹시 거짓말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한번쯤 해보게 한다.
아내는 누구에게 상냥한 말투로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남편은 의심한다. 여기서 남편이 너그럽게 아내의 말을 믿고 돌아선다면 불륜 드라마는 성립될 수 없다. 남편은 아내의 거짓말을 밝혀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녀는 자주 주어가 맞지 않는 문장을 말하거나 이유 없이 화를 내고 얼굴을 붉힌다. 그녀에게 정말 애인이 있는 것일까.
여기서 남편이 무턱대고 화를 내며 복수를 하려고 든다면, 이는 한 인물이 선입견으로 인해 진실을 거짓으로 오인하는 ‘오델로의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편이 어떤 행동을 해야 좀 더 긴장감 넘치는 드라마로 전환될까. 21세기의 남편은 아내의 표정과 몸짓을 담담하게 분석한다.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 폴 에크먼은 그의 저서『텔링 라이즈』에서 “표정과 몸짓, 실수에는 거짓말을 나타내는 여러가지 다양한 단서가 들어있다.”고 말한다. 눈의 깜빡임, 동공 확장, 안면 홍조, 표정의 비대칭, 타이밍의 오류, 말의 흐름과 맞지 않는 표정 등을 면밀히 관찰하는 남편의 모습은 적절한 서스펜스가 된다. 아내의 신뢰근육(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근육, 본래의 감정을 예측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을 관찰하는 남편의 모습은 마치 하나의 생물을 해부하고 분석하는 과학자처럼 느껴진다.
봄이 찾아오면 드라마 속 유부녀들은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난다. 불륜은 가장 원초적인 이야기이자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소재다. 픽션에서 아내의 거짓말을 탐색하기 위한 남편은 인기몰이를 위한 좋은 소재이지만, 현실에서는 다르다. 의처증에 걸린 남편의 말로나 바람을 피운 부인으로 인해 망가진 가정사는 빈번하게 신문을 장식한다. 픽션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우스운 행동이지만, 논픽션에 드라마의 낭만을 인용하는 것도 비합리적이다.
상대의 말이 거짓인지 진실인지를 판명하는 작업은 신중히 진행되어야 한다. 또한 진실의 판명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불륜 드라마 역시 이 지점을 포착해야만 한 단계 진화할 수 있다. 폴 에크먼이『텔링 라이즈』에서 인용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구절을 되새겨보자. “나의 연인이 진실하다고 맹세할 때 / 나는 그녀가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를 믿는다.”
한경닷컴 이미나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