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은 한 층 아래 대리점에 가보세요."

휴대전화 자급제(블랙리스트 제도) 시행 첫날인 1일. 롯데마트 서울역점 3층에 위치한 디지털 가전매장 여러 곳을 둘러봤지만 어디에도 단말기는 보이지 않았다. 휴대폰 액세서리만 진열돼 있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날부터 이동통신사에 관계 없이 제조사 가전 유통매장 및 대형마트,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 휴대폰을 구입해 사용할 수 있는 블랙리스트 제도를 도입했다. 이통사 대리점에서만 휴대폰을 구입할 수 있던 것과 달리 유통 경로를 다양화해 소비자들이 보다 합리적인 가격에 단말기를 구매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방통위가 발표한 단말기 구입처에선 판매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롯데마트 디지털 가전매장의 한 직원은 "본사에서 지침이 나오지 않아 언제부터 단말기가 들어올지 알 수 없다"며 어리둥절해 했다. 본사 관계자는 "제조사가 물량을 풀어야 마트에서도 구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홈플러스나 이마트도 상황은 비슷했다. 디지털 가전매장 직원들은 모두 블랙리스트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했고, 본사에서 내려온 공문이 없다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이정순 방통위 통신이용제도과 사무관은 "1일은 자급제를 시행할 수 있는 전산시스템을 완료한 날짜로 시중에서 당장 구매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며 "6~7월에 일부 물량이 공급되고 7월 이후 하반기부터 시중에 나오는 단말기가 다양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방통위는 제조사의 반응을 기다리며 관망하는 자세다.

삼성 모바일샵 대학로점의 점원은 "블랙리스트 관련 지시를 아직 못 받았다" 면서도 "계속 모바일샵 점포를 늘리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이 굳이 다른 매장에 공급할 이유가 없다. 노키아, 블랙베리, 모토로라 등만 손해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통사들과의 협의를 거쳐 유통경로와 관계없는 할인 요금제를 이달 중으로 내놓겠다는 방통위의 발표에 대해서도 일선 대리점들은 단호한 입장이다.

SK텔레콤 T월드 명륜점 점원은 "마트에서 좀 더 저렴하게 단말기를 구입할 수는 있겠지만 통신사의 보조금 할인 혜택을 못 받기 때문에 제 값 다 주고 사는 셈" 이라며 "유심 비용(9900원)에 가입비(24000원)도 따로 내고 채권료(35000원)까지 고객이 전부 부담하므로 오히려 더 손해"라고 주장했다.

컨시어지 대학로점 점원은 "방통위가 제대로 준비도 하지 않고 너무 성급하게 내놓은 것 같다" 며 "아직까진 확실히 단말기 보조금을 지원 받을 수 있는 통신사를 이용하는 게 소비자들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일 SK텔레콤은 올 1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 콜에서 "블랙리스트 요금제는 현재 통신사업자간 협의중으로 아직 확정된 것이 없다"고 밝혔다.

현재 방통위는 블랙리스트 관련 홈페이지(http://www.단말기자급제.한국)를 개설해 제도에 대한 안내와 서비스 이용 방법 및 예상 구입처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한경닷컴 김소정 기자 sojung1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