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의 해결책으로 여겨졌던 긴축재정 처방이 거센 ‘삼각파도’를 맞아 흔들리고 있다. 독일 주도로 유로존 국가에 퍼진 긴축정책에 대한 저항이 거세지는 양상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3일 “네덜란드 정치권의 긴축합의 실패로 내각이 총사퇴하고 프랑스 대선에서 좌파인 프랑수와 올랑드 사회당 대선후보 당선이 유력해지면서 유로존의 긴축정책이 강한 역풍을 맞게 됐다”고 보도했다.

◆항해사·갑판장 잃은 긴축호(號)

유로존의 긴축정책은 독일 네덜란드 등 범게르만권 연합과 메르코지(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체제를 양대 축으로 진행됐다. 유럽연합(EU) 25개국은 지난달 2일 엄격한 재정관리를 도입하는 신재정협약을 맺었다. 불과 한 달 만에 핵심지역에서 긴축정책의 기반이 무너진 것이다. 유로존 긴축호가 항해사(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와 갑판장(사르코지 대통령)을 잃은 채 선장(메르켈 총리)만 남은 꼴이 됐다.

프랑스에선 대선 1차투표에서 좌파 올랑드 후보가 사르코지 대통령을 밀어내면서 메르코지 시스템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다. 올랑드는 정부지출 확대와 유럽중앙은행(ECB)의 유로존 지원 적극 개입을 주문하는 등 사실상 ‘반(反)긴축’을 주요공약으로 삼고 있다. 신재정협약도 재협상하겠다고 공언했다.

◆성장전략 권고하는 IMF

뉴욕타임스는 “재정위기 대응과정에서 긴축정책을 도입했던 거의 모든 국가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졌다”며 “긴축처방 대신 성장전략을 택하라는 압력도 거세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동안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아일랜드, 이탈리아, 벨기에 등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지면서 심각한 반긴축 정서를 확인했다는 것. 각국 민심이 독일의 긴축정책에 대한 거부의사를 밝히면서 위기해결 과정에서 독일이 고립되고 있다.

외부 주문도 늘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와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은 경기부양책 사용을 권고했다. 마리오 몬티 이탈리아 총리도 여기에 동조하고 있다. 조르디 바케 파네스 바르셀로나국제문제연구소장은 “긴축처방은 효과가 없었고 긴축이 유일한 해법이 아니라는 점을 모두가 이제 드러내놓고 얘기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경제성장 발목잡는 긴축 후유증

긴축정책의 후유증으로 유로존의 각종 경기지표가 악화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긴축이 내수 위축과 실업 증가를 불러 경제성장 동력을 식히는 악순환 고리가 만들어졌다는 것.

시장조사업체 마킷이코노믹스가 이날 발표한 4월 유로존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6.0으로 예상치(48.1)와 전월 수치(47.4)를 모두 밑돌았다. 독일의 4월 PMI는 46.3으로 3월(48.4)보다 더 미끄러졌다. 2009년 7월 이후 가장 큰 하락폭이다. 도이체방크는 긴축정책으로 올해 갉아먹는 유로존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대응방안도 엇갈리고 있다. 옌스 바이트만 분데스방크(독일 중앙은행) 총재는 “ECB의 화력은 제한돼 있고 통화정책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며 “별다른 해법이 없는 만큼 긴축처방을 더욱 적극적으로 이행해야 한다”고 고집했다.

반면 폴 크루그먼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슈피겔 기고를 통해 “경제력차이가 큰 남북유럽이 단일통화를 사용하면서 불거진 위기를 긴축정책으로 해소할 수 없다”며 “유로존을 깰 수 없다면 ECB의 적극적인 시장개입과 경기부양이 올바른 해결책일 것”이라고 반박했다. 로런스 프랜솔레트 바클레이즈 애널리스트는 “긴축과 성장이 어느 선에서 균형을 맞춰야 할지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게 유럽의 고민”이라고 말했다. 긴축처방이 흔들리면서 유로존의 최종해법 찾기는 재정위기가 처음 터졌던 2년 전 상황으로 되돌아가 버렸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