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 등에서 최고경영자(CEO) 임금 인상에 제동을 거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월스트리트 등 금융권에서는 주주들이 경영진 고액 보수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주가 및 실적과 무관하게 CEO 임금을 올리는 것은 시장원리에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일부 국가는 CEO 임금을 법적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일반 근로자와 CEO의 임금 격차가 지나치게 벌어진 데 대한 비난 여론을 반영한 것이다. 지난해 전세계로 확산됐던 반(反)월가시위도 이런 분위기 형성에 기여했다는 분석이다.

◆“여론 때문에” CEO 임금인상 ‘주춤’

미국 최대 노조조직인 산별노조총연맹(AFL-CIO)이 19일(현지시간)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상장기업 CEO들의 임금은 평균 14% 인상되는 데 그쳤다. 이는 2010년 인상률 23%에서 대폭 낮아진 수준이다. 리처드 트럼카 AFL-CIO 회장은 “주주들이 경영진 연봉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결과”라고 말했다.

CEO 임금이 높은 금융권을 중심으로 이 같은 움직임이 거세다. 최근 씨티그룹 주주들이 월스트리트 역사상 처음으로 경영진의 고액 임금에 반기를 든 데 이어 이날 영국 바클레이즈 주주들도 이런 움직임에 합류했다. 바클레이즈는 밥 다이아몬드 CEO가 받기로 한 270만파운드 보너스 중 절반을 실적이 개선될 때까지 유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주주들의 반발을 수용한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주주들이 CEO 임금 인상을 막는 움직임이 미국 지역은행들로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오하이오주에 있는 지역은행 퍼스트메리트 주주들은 CEO 임금을 550만달러에서 640만달러로 인상하는 안을 부결시켰다. 이들은 퍼스트메리트 주가가 지난 1년간 20% 급락하자 CEO 임금 인상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컨설팅업체 ISS의 패트릭 맥건 자문위원은 “씨티 주주들의 결정이 미국과 영국 등 유럽지역 은행들에 경종을 울렸다”고 평가했다. 씨티발 주주의 반란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는 얘기다.

영국은 내년부터 대기업 CEO의 임금을 주주들이 직접 결정하는 법안 도입을 추진 중이다. 주주 75% 이상이 찬성해야 임금이 확정되도록 법제화하겠다는 것이다. 지금은 주주가 CEO 임금에 대해 조언하는 수준이다. 빈스 케이블 영국 산업장관은 “이런 조치를 통해 연봉 결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책임 있는 자본주의를 실현할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소득격차 놔두면 안된다

지난해 CEO 임금상승률이 낮았던 것은 고액 연봉에 대한 전 세계적인 비판 여론이 반영된 것이란 해석이다. CEO들이 지나치게 높은 연봉을 받는 것이 소득 불균형의 상징처럼 인식되자 은행과 기업들이 과도한 인상을 자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국 근로자 평균 수입 대비 CEO 임금 비율은 1965년 24배에서 2010년 325배로 뛰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미국 등 선진국의 소득 불균형이 1970년대 말부터 심화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금융산업이 발달한 미국과 영국에서 소득 격차가 더 커졌다. 이에 따라 미국 등에서는 금융위기 이후 소득 불균형을 그대로 방치하면 안된다는 여론이 확산됐다. 미국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한 은행과 자동차업체 CEO 임금 인상을 제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