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후 3시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본사. 오는 27일 구내식당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열린 입찰설명회는 22개 중견·중소업체 관계자 70여명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대기업 중심으로 8개 업체만 참여한 2010년 설명회 때와는 크게 달라진 풍경이다.

한전이 대기업을 배제하고 중견·중소기업만 입찰에 참여하도록 참가 자격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한전의 구내식당 매출은 연간 60억원. 규모도 크지만 ‘한전 급식업체’라는 타이틀을 따는 순간 대외 신인도가 껑충 뛰어오르는 만큼 급식업체들로서는 놓칠 수 없는 ‘대어’다.

잔뜩 기대에 부풀었던 중견·중소업체의 분위기를 한방에 가라앉힌 것은 급식업계 1위 아워홈 관계자들의 출현이었다. 참석자들 사이에서는 “해보나마나한 게임”이라는 불평이 터져 나왔다. 일부 중소기업 관계자는 “아워홈뿐만 아니라 풀무원, 동원 같은 중견기업들의 위세도 당해내기 어렵다”고 푸념하기도 했다.

이 같은 풍경은 한전을 시작으로 다른 공공기관 구내식당 운영자 선정 때도 그대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기획재정부가 지난달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제한집단 소속 대기업들을 공공기관 급식사업자에서 배제할 것을 권고하면서 삼성에버랜드 현대그린푸드 신세계푸드 한화호텔&리조트 CJ프레시웨이 등이 공공 시장에서 전면 퇴출당했다. 그 자리를 중견·중소기업들로 채우자는 것이 정부의 의도다.

상황이 꼬인 것은 1위 사업자 아워홈 때문이다. 1984년 LG유통 급식사업부로 출발한 아워홈은 2000년 LG에서 계열분리가 이뤄져 상호출자제한 대상 기업집단에 소속돼 있지 않다. 때문에 급식 1위 사업자로서 점유율을 더욱 확대해 나갈 수 있는 호기를 맞았다. 한 중견기업 관계자는 “정부의 어설픈 정책으로 규모의 경제를 갖춘 아워홈이 공공 시장을 통째로 삼키게 됐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재정부도 이런 기류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어떡하든 아워홈을 배제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아워홈은 실질적으로 재벌”이라며 “공공기관이 자율적으로 아워홈도 (구내식당 운영에서) 제외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공기관들은 조금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아워홈을 입찰에서 제외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 이날 입찰설명회를 연 한전 관계자는 “아워홈의 입찰 참여를 막을 명분과 논리가 없다”고 설명했다.

아워홈도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풀무원이나 동원보다 자산이 적은데 과거 LG 계열사였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며 “입찰에 무조건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워홈 "풀무원·동원보다 자산 적은데 …"

이 와중에 정작 정부가 ‘일감’을 몰아주려고 한 중소기업들은 “설 자리가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공공기관들은 중소기업 급식의 위생이나 품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며 “결국 이번에도 또 다른 대기업에 치일 판”이라고 우려했다.

공공기관 직원들도 드러내 놓고 표현은 못하지만 속앓이를 하고 있다. 우선 호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 늘어난다. 한전의 경우 이번에 사업자를 바꾸면서 임직원들이 부담하는 식대를 한 끼당 3000원에서 3500원으로 올렸다.

중견·중소업체의 식자재 구매력이 대기업에 비해 떨어지는 만큼 가격을 올려줘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한전의 한 직원은 “가격은 올랐는데 위생이나 품질도 만족스러울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신세계푸드가 식당을 운영 중인 한 공기업 관계자는 “대다수 직원이 현 급식회사의 가격과 질에 만족하고 있지만 매년 재정부로부터 경영평가를 받는 마당에 어떻게 버틸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결국 동반성장 정책에 따라 정부가 공공 급식시장 재편에 나섰지만 어느 누구도 만족스럽지 못한 양상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아워홈-중견기업-중소기업 간에 서로 물고 물리는 접전을 지켜보는 기존 대기업들의 속도 쓰릴 수밖에 없다.

현재 286개 공공기관 중 대기업에 구내식당 위탁을 맡긴 공공기관은 총 44곳에 60개 식당이다. 이들은 기존 계약이 끝나는 대로 중견·중소기업으로 사업자를 바꿔야 한다. 물론 법적으로 강제사항은 아니다. 하지만 재정부의 ‘권고’는 권고 이상의 힘을 갖고 있다. 방침이 발표난 지 한 달도 안 돼 이미 20여개 공공기관이 사업자를 바꾸기로 했다.

서보미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