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말하는 듯했지요/잎을 내기 위해서는 상처를 견뎌야 한다고/해마다 오월 붓꽃은 내 생각 속에서보다 더/늦게 피었지요 공기들의 약속/(중략)/마지막 꽃잎을 떨구면서 오월 붓꽃은/속삭이는 듯했지요/나는 당신이에요, 나는 죽지 않아요’ (‘오월 붓꽃’ 중)

‘돌의 내부가 암흑이라고 믿는 사람은/돌을 부딪쳐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돌 속에 별이 갇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다/돌들이 노래할 줄 모른다고 여기는 사람은/저물녘 강의 물살이 부르는 돌들의 노래를/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돌 속의 별’ 중)

‘돌’과 ‘꽃’의 대화. 시인 류시화 씨(54·사진)가 15년 만에 시집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문학의숲)을 펴냈다. 그동안 쓴 350여편 중 56편을 추려 담았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1991)와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1996)에 이은 세 번째 시집이다.

이번 시집의 해설을 쓴 이홍섭 시인은 멕시코 시인 옥타비오 파스를 인용해 류씨가 “일상적인 언어 질서를 위반하고 이를 통해 언어를 훼손 이전으로 돌려 놓는다”고 평했다. 류씨의 시가 이를 통해 보편적인 공감을 획득할 수 있다는 설명으로 읽힌다. 완연히 다른 느낌의 돌과 꽃이 시를 통해 ‘지구 별의 형제 자매’가 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공감은 사랑시들에서도 독자를 저릿하게 만든다.

‘우리를 만지는 손이 불에 데지 않는다면/우리가 사랑한다고 할 수 있는가/기억을 꺼내다가 그 불에 데지 않는다면/사랑했다고 할 수 있는가/그때 나는 알았지/어떤 것들은 사라지지 않는다고/우리가 한때 있던 그곳에’ (‘첫사랑의 강’ 중)

그는 시를 종이에 쓰지 않고 입 속에서 중얼거리며 외워서 만든다고 했다. 어떤 시는 거의 1년에 걸쳐 한 줄씩 덧붙여 입 속에서 완성한 경우도 있다고 했다. 1년에 5개월 정도를 인도와 티베트 등에서 지내는 그는 사물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읊어낸다.

‘너는 나에게 상처를 주지만 나는 너에게 꽃을 준다, 삶이여/나의 상처는 돌이지만 너의 상처는 꽃이기를, 사랑이여/삶이라는 것이 언제 정말 우리의 것이었던 적이 있는가’ (‘이런 시를 쓴 걸 보니 누구를 그 무렵 사랑했었나 보다’ 중)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