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몸싸움 방지법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영국 하원 본회의장 바닥에는 ‘소드 라인(Sword lines)’이 그어져 있다. 여야 의석을 구분하는 두 개의 붉은 선이다. 의원들이 격한 논쟁 끝에 칼을 뽑아들고 격투를 벌이던 악습을 깨려는 데서 유래했다.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아직 소드라인을 두는 건 의회 내에서는 어떤 폭력도 금지한다는 원칙을 상기시키기 위해서란다. 막말을 하는 의원들은 시계탑 빅벤 내 작은 방에 가뒀다. 엄청난 종소리에 시달리면서 잘못을 반성하라는 취지였다고 한다.
미국 의회의 폭력 이력도 만만치 않다. 1856년 5월 프레스턴 브룩스 하원의원은 상원으로 쳐들어가 찰스 섬너 상원의원을 큼직한 지팡이로 마구 내리쳤다. 북부 출신 섬너가 남부의 앤드루 버틀러 상원의원을 “돼먹지 못한 노예제를 신봉하는 늙은 돈키호테”라고 비난하자 버틀러의 사촌인 브룩스가 보복을 했던 것이다. 섬너는 중상을 입고 장기치료를 받았다.
1902년엔 민주당 상원의원끼리 드잡이가 벌어졌다. 필리핀 지배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벤저민 틸먼에게 존 맥로린이 욕을 하자 발끈한 틸먼이 주먹을 휘둘렀다. 이 충돌 후에 ‘어떤 의원도 부적절한 행위와 동기를 다른 의원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신설됐다. 지금은 의원이 인신모욕 발언 등을 할 경우 의장은 퇴장, 일정 기간 출석 금지 등의 제재를 할 수 있다. 당직자들의 ‘의원 대리전’을 막기 위해 의사당 출입자격도 엄격히 제한된다.
우리 의정사도 60년을 넘겼지만 폭력은 여전하다. 쇠망치에 전기톱, 빠루까지 동원해 조폭영화 뺨치는 활극을 연출한 게 2008년 말이다. 미디어법을 놓고 격돌한 후 한 의원은 ‘우리를 용서하소서’란 글을 통해 “국회를 또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정말 ×새끼다”라고 탄식했다. 작년엔 민노당의 김선동 의원이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리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국회 몸싸움을 방지하기 위한 ‘국회선진화법’이 그제 통과됐다. 직권상정 요건을 천재지변이나 전시 사변 등 비상사태와 교섭단체 대표 간 합의가 있을 때로 제한하는 대신 ‘의안 자동 상정제’를 도입했다.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필리버스터)도 가능해진다. 하지만 최루탄 투척처럼 처벌을 각오하고 ‘일’을 벌이는 경우엔 막을 방법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가 폭력으로 얼룩진 건 규정 미비탓만은 아닐 게다. 의원들의 치열한 자정노력과 폭력·막말 의원을 뽑지 않는 유권자들의 성숙한 의식이 뒷받침돼야 한다. 새로 당선된 의원들이 ‘역대 최다 직권상정, 역대 최악 몸싸움’이란 18대 국회의 오명을 얼마나 씻어낼지 지켜볼 일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미국 의회의 폭력 이력도 만만치 않다. 1856년 5월 프레스턴 브룩스 하원의원은 상원으로 쳐들어가 찰스 섬너 상원의원을 큼직한 지팡이로 마구 내리쳤다. 북부 출신 섬너가 남부의 앤드루 버틀러 상원의원을 “돼먹지 못한 노예제를 신봉하는 늙은 돈키호테”라고 비난하자 버틀러의 사촌인 브룩스가 보복을 했던 것이다. 섬너는 중상을 입고 장기치료를 받았다.
1902년엔 민주당 상원의원끼리 드잡이가 벌어졌다. 필리핀 지배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벤저민 틸먼에게 존 맥로린이 욕을 하자 발끈한 틸먼이 주먹을 휘둘렀다. 이 충돌 후에 ‘어떤 의원도 부적절한 행위와 동기를 다른 의원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신설됐다. 지금은 의원이 인신모욕 발언 등을 할 경우 의장은 퇴장, 일정 기간 출석 금지 등의 제재를 할 수 있다. 당직자들의 ‘의원 대리전’을 막기 위해 의사당 출입자격도 엄격히 제한된다.
우리 의정사도 60년을 넘겼지만 폭력은 여전하다. 쇠망치에 전기톱, 빠루까지 동원해 조폭영화 뺨치는 활극을 연출한 게 2008년 말이다. 미디어법을 놓고 격돌한 후 한 의원은 ‘우리를 용서하소서’란 글을 통해 “국회를 또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정말 ×새끼다”라고 탄식했다. 작년엔 민노당의 김선동 의원이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리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국회 몸싸움을 방지하기 위한 ‘국회선진화법’이 그제 통과됐다. 직권상정 요건을 천재지변이나 전시 사변 등 비상사태와 교섭단체 대표 간 합의가 있을 때로 제한하는 대신 ‘의안 자동 상정제’를 도입했다.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필리버스터)도 가능해진다. 하지만 최루탄 투척처럼 처벌을 각오하고 ‘일’을 벌이는 경우엔 막을 방법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가 폭력으로 얼룩진 건 규정 미비탓만은 아닐 게다. 의원들의 치열한 자정노력과 폭력·막말 의원을 뽑지 않는 유권자들의 성숙한 의식이 뒷받침돼야 한다. 새로 당선된 의원들이 ‘역대 최다 직권상정, 역대 최악 몸싸움’이란 18대 국회의 오명을 얼마나 씻어낼지 지켜볼 일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