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1980년대 한국 현대미술은 시장에서 찬밥 신세였다. 동양화의 위세에 눌린 탓이다. 시장에서 인기가 없다는 것은 곧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로 통했다. 그러나 화랑가에서 그림을 보는 안목이 높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컬렉터 한 명의 시선은 달랐다. 현대미술 컬렉터로 유명한 엄중구 샘터화랑 대표(63)다.

‘곱추 화가’ 손상기, 한국적 모더니스트 전혁림, ‘묘법 화가’ 박서보, 윤형근, 손장섭, 원석연, 이원희, 프랑스 화가 베르나르 뷔페, 베트남 ‘국민화가’ 부이샹파이에 이르는 폭넓은 컬렉션은 그의 성을 따 ‘엄컬렉션’으로 불린다.

미술품 경매회사 K옥션(대표 조정열)은 오는 25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경매장에서 엄 대표의 30년 컬렉션 1000점 중 92점을 경매하는 이색 행사를 마련한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엘리자베스 테일러 컬렉션’ ‘피터 노튼 컬렉션’ 등 유명인사와 저명한 컬렉터의 이름을 내걸고 경매한 적이 있지만, 국내에서 개인 컬렉터의 이름을 건 경매를 진행하는 것은 처음이다.

정상화 김창열 박서보 김종학 황용성 오치균 등 인기 작가들이 한창 활동하던 시기에 만든 수작들을 모았다는 점에서 엄 대표의 컬렉션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는 “제가 겪은 수많은 어려움과 시행착오를 미술을 사랑하고 아끼는 컬렉터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사명감에서 수작 90여점을 내놓았다”고 말했다.

그는 미술작품을 수집하게 된 이유에 대해 “순전히 예술로서 미술을 사랑했다”며 “미술의 이념까지를 지지한 것은 아니었지만 화가들의 작품에 서려 있는 예술성과 작업의 진정성을 인정해주고 싶다”고 설명했다.

그가 미술시장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것은 1975년. 당시 전시 현장을 돌아다니며 신진, 중견 작가의 작품을 사모았다. 미술품 구입을 투자로 생각하는 요즘 세태를 기준으로 보면 ‘전혀 돈이 되지 않는’ 컬렉션이었다. 미술 전공자도 아니었고 미술에 관한 지식도 미비한 그는 “매일 현장에서 접할 수 있었던 수많은 작품들 그대로가 훌륭한 스승이었다”고 전했다.

“새벽 2시 전에는 잠자리에 든 적이 없을 정도로 화랑 경영과 미술에 빠져 있었습니다. 컬렉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전에서 많은 작품을 접해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일류 컬렉션을 위해서는 일류 컨설턴트를 만나야 한다”며 “그동안 어려움도 많이 겪고 ‘수업료’도 많이 지불했다”고 귀띔했다. 명품 컬렉션으로 가득한 미술관을 만들고 싶다는 의사도 내비쳤다. 19일 오후 5시에는 ‘엄중구 대표와의 컬렉션 대화’를 진행한다. (02)3479-8824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