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숫자만 챙기다 세세한 사안까지 들여다보고 있다.”

오는 21일이면 이건희 삼성 회장이 서울 삼성전자 서초 사옥으로 정기 출근한 지 1년이 된다. 이 기간 삼성 임직원들은 늘 ‘긴장모드’였다.

삼성이 서초동으로 옮긴 2008년 이후에도 삼성 영빈관인 한남동 승지원에서 업무를 보던 이 회장이 매주 2회 사옥으로 정기 출근하면서 임직원들은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했다. 지난주부터는 오전 6시30분 전후로 출근해 경영진은 더 바빠졌다.

이 회장은 작년 4월 출근 경영을 시작한 뒤 ‘쇄신’이라는 말을 즐겨 썼다. 첫 출근 때부터 “처음 듣는 얘기가 너무 많았다”며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했고 작년 6월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곧바로 부정이 적발된 삼성테크윈 사장과 삼성카드 최고재무책임자(CFO)를 경질했다.

해이해진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수시 인사 카드도 꺼내들었다. 매년 12월 정기 사장단 인사를 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7월과 10월에 잇따라 일부 사장을 교체했다.

지난달엔 삼성전자가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방해했다는 보고를 받고 대로하면서 “책임자를 중징계하라”고 지시했다. 또 삼성테크윈이 K-9 자주포를 납품하는 과정에서 품질 불량이 드러나자 17일 중공업·건설 사장단을 불러 “방산 부품 불량이 우리 삼성에서 나왔다는 것이 정말 안타깝고 부끄럽다”며 “품질 불량은 근원부터 차단해야 하고 결과가 잘못되면 엄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둔형 경영자’에서 ‘소통형 리더’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 회장은 수시로 임직원들과 오찬경영을 하며 대화 채널을 넓혀나갔다. 무엇보다 여성을 많이 배려했다.

작년 8월 여성 임원들과 점심을 함께하며 “여성 사장들이 빨리 나와야 한다”고 했고 지난 10일엔 “여성 지역 전문가를 더 늘리라”고 주문했다.

소프트웨어 인력도 챙겼다. 작년 7월 “소프트 기술 경쟁력이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며 “소프트웨어 인력은 열과 성을 다해 뽑고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계열사 사장들과도 수시로 만나 경영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지난주 금융계열사 사장단에 이어 17일엔 삼성물산, 삼성중공업, 삼성엔지니어링, 삼성테크윈 사장들을 만나 “국내에서 안주하지 말고 삼성전자처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달라”고 당부했다. 또 “발전과 에너지 관련 기술은 무엇보다 품질과 안전이 중요하다”며 “삼성이 만든 제품은 20~30년 가도 문제없다는 그런 평판을 얻도록 하는 게 나의 바람”이라고 했다.

이 회장이 경영 현안을 챙기면서 대부분 삼성 계열사 실적은 개선됐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동분서주하며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도 기여했다. 이 회장은 삼성을 국민에게 사랑받는 ‘국민기업’으로 격상시키는 것을 본인의 마지막 숙제로 여기고 있다는 게 삼성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