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붐 세대의 정년퇴직이 시작되면서 노후설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각종 매스컴에서는 ‘노후가 편안하려면 10억원이 있어야 한다. 최소 7억원은 필요하다’는 식의 노후자금 관련 내용을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노후자금을 마련하고 퇴직하는 베이비부머가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는가. 설령 그만큼의 노후자금이 있더라도 퇴직 후 30~40년의 긴 시간은 도대체 무슨 일을 하며 보낼 것인가. 큰 질병이라도 걸리면 치료비와 간병은 어떻게 할 것인가. 부동산 전망이 심상치 않다는데 집 한 채밖에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100세 장수를 전제로 한 노후설계

노후설계를 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점은 100세 장수를 전제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박유성 고려대 교수가 발표한 ‘연령대별 100세 도달 가능성’에 따르면, 1945년생 생존자 중에서 100세까지 살 가능성은 남성이 23.4%, 여성이 32.3%였다. 1958년생 생존자 중에서 남성은 43.6%, 여성은 48%가 97세까지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특별한 사고를 당하거나 질병에 걸리는 일만 없다면 100세까지 산다는 것을 전제로 노후설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100세 장수를 전제로 생애설계를 하고 20~30대 젊은 시절부터 준비해 나간다면 장수는 축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노후 준비를 20~30대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면 의아스럽다는 표정을 짓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퇴직을 1~2년 앞두고 시작하면 되는 것이지 이제 막 직장생활을 시작한 사람이 무슨 노후 준비란 말인가. 하지만 그렇지 않다. 노후 준비는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 출발과 함께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노후라는 말에 저항감이 느껴진다면 후반 인생설계라고 해도 좋다.

젊은 시절부터 후반 인생설계를 시작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미 100세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60세 정도까지 일하다가 65세쯤 세상을 떠나던 시대와는 다르다. 퇴직 후 30~50년의 긴 후반 인생이 기다리고 있다. 시간을 들여 대비하지 않으면 행복한 노후를 맞이할 수 없다.

◆재테크보다 보험·연금에 먼저 가입

두 번째로 생각해야 할 것은 보험과 연금이다. ‘재테크를 잘해서 노후자금을 충분히 만들자’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예상치 못한 사고와 질병 등에 대비한 ‘보험’과 퇴직 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최저 생활비 정도를 보장받는 ‘연금’에 가입하는 게 중요하다.

미국과 일본에서 퇴직 후의 생활비에 대해 조사한 결과 퇴직자의 30~40%가 생활비가 줄지 않았다고 답했다. 가장 큰 이유는 의료비와 간병비에 있다. 의료비는 일반 생활비와 속성이 다르다. 필요한 시기를 예측할 수 없거니와 단기간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갈 수 있다. 언제 얼마큼 필요할지 모르지만 일이 생겼을 때 지급을 해주는 ‘보험’을 이용해야 하는 이유다.

보험과 함께 중요한 대비책이 연금이다. 복지 선진국은 국민들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최저 생활비 정도를 보장해주는 나라다. ‘주요국의 노후생활 자금원 비교표’를 보자. 우리나라와 미국 일본에서 60세 이상 정년퇴직자를 대상으로 ‘노후의 가장 중요한 수입원’에 대해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응답자의 30%가 ‘자녀 도움을 받는다’고 답했다. 30년 전만 해도 이 비율이 70%를 넘었다. 반면 미국과 일본에선 연금 비중이 60~70%로 가장 높다. 자녀의 도움을 받는 비율도 1~2%에 그쳤다. 우리나라에서도 10년쯤 후에 같은 조사를 하면 미국과 일본 수준으로 낮아질 것이다. 우리나라의 고령세대들이 점차 자녀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워질 것이란 뜻이다. 대신 현재 14% 정도인 연금 의존비율이 선진국과 비슷하게 60~70% 정도로 높아지지 않으면 안 된다.

노후에 대비하기 위해 현역시절 해야 할 일은 3층연금, 즉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에 가입하는 것이다. 이미 퇴직했거나 퇴직 직전에 있는데도 연금 준비가 소홀하다면 즉시 연금이나 주택연금을 고려해볼 만하다.

◆균형 잡힌 자산관리로 노후 대비

세 번째로 생각해야 할 점은 균형 잡힌 자산관리를 통한 노후자금 마련이다. 우리나라에선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아껴 어느 정도의 목돈을 마련하고, 그 돈과 금융기관 대출금을 합해 부동산에 투자하는 경향이 강했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서 어느 정도 부를 이루기도 했다. 이것이 노후자금 마련 수단이 됐다.

문제는 이런 관행이 오랫동안 계속되다 보니 가계자산의 80% 이상이 부동산에 묶이게 됐다는 것이다. 부동산에 지나치게 편중된 자산구조를 갖게 됐다. 부동산 시장의 전망으로 보나 자산관리 측면에서 보나 우리나라 가정의 자산구조는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금융자산, 그 중에서도 투자형 금융자산의 비중을 높여갈 필요가 있다. 저금리에다 인플레이션 리스크까지 커져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소 리스크가 따르는 투자상품에 장기·분산 투자하는 방법을 젊은 시절부터 공부하고 실천해 나가야 한다.

◆자녀 교육비를 과감하게 줄이자

네 번째는 과감하게 자녀 교육을 개혁하는 일이다. 자녀 교육비를 줄이라는 얘기다. 2010년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가 55세 이상 퇴직자 500명을 대상으로 퇴직자의 생활실태를 조사한 결과 충분한 준비 없이 퇴직해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응답자 비율이 무려 60%였다. 노후 준비를 못한 이유는 주로 ‘자녀 교육비 때문’(60%)이었다. 과다한 교육비 지출로 노후 자금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주위에서 노후에 자녀 도움을 받기는커녕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자녀에게 남은 돈까지 다 내주는 사례를 봤을 것이다. 예를 들어 사업에 실패한 아들이나 사위가 손을 벌리면 부모로선 무작정 모른 체만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평생 절약해서 모아둔 돈을 내주고 노부부가 지하 쪽방에서 산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다.

지나친 사교육비 지출로 노후자금을 마련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렇게 많은 돈을 사교육비로 쓰는 게 과연 아이들의 장래에 도움이 되느냐 하는 것도 생각해볼 문제다. 요즘은 자식이 일류기업에 들어가도 40대 중반이면 언제 회사를 그만둬야 할지 모르는 시대다. 시험만 잘 보면 끝나는 시대가 아닌 것이다.

건전한 경제교육을 통해 자녀의 자립심과 직업 경쟁력을 키우는 한편 교육비 지출에 대한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교육비를 아껴서 자신의 노후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이에 대해 부부가 공통된 인식과 확고한 소신을 갖고 있어야 한다.

◆퇴직 후 30~40년, 무엇을 할 것인가

노후설계를 할 때 마지막으로 생각해야 할 점은 퇴직 후 30~40년간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아갈 것인가다. 재취업을 해 좀 더 수입을 얻기 위한 인생을 살 것인지, 자기 실현을 위한 인생을 살 것인지, 사회 환원적인 삶을 보낼 것인지, 아니면 이 세 가지를 병행하면서 살 것인지에 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강창희 <미래에셋 부회장 chkang@miraeass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