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애플이 각사의 명운(命運)을 걸고 특허 전쟁을 시작한 지 15일로 꼭 1년이 됐다. 미국에서 시작된 싸움은 전 세계 9개국 13개 법원으로 전선을 넓혀왔다.

지금까지는 뚜렷한 승자도, 패자도 없는 상황이다. 두 회사 모두 이렇다 할 승기를 잡지 못했다. 대회전은 오는 6월부터 미국 법원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서 치러질 예정이다. 특허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액이 막대한 미국에서 법원이 한쪽의 손을 들어줄 경우 상대방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된다. 이 때문에 두 회사가 적정선에서 합의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전 세계를 무대로 싸움

먼저 포문을 연 곳은 애플이다. 지난해 4월15일 미국 새너제이 법원에 ‘삼성전자가 지식재산권을 침해했다’며 애플이 소송을 제기했던 것이 기나긴 싸움의 시작이었다.

삼성전자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삼성전자 입장에서 애플은 최대 고객사 가운데 하나다.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낸드플래시메모리, 모바일 D램 등을 애플에 납품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애플의 제소 이후 1주일도 지나지 않은 4월21일 서울중앙지방법원과 독일 만하임, 일본 도쿄 법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애플을 제소했다. 삼성이 갖고 있는 통신 특허를 애플이 무단으로 사용했다는 이유였다.

이렇게 시작된 두 회사의 싸움은 전 세계로 무대를 넓혔다. 현재 재판이 걸려 있는 국가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일본 호주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영국 등 9곳에 이른다.

지역만 확대된 것이 아니다. 아이폰4S, 갤럭시탭 10.1, 갤럭시넥서스 등 양사의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소송 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쟁점이 되는 특허 기술도 다양화됐다.

1년이 지난 지금, 전쟁은 소강 상태에 접어든 분위기다. 서로를 향해 끊임없이 공격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다. 애플은 독일 뒤셀도르프, 네덜란드 헤이그,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등에서 삼성전자 제품에 대한 판매금지 가처분 결정을 받아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판매금지 가처분에 대한 기각 판결을 받아내거나 디자인을 수정한 제품을 내놓는 방법 등으로 애플의 특허를 피했다. 현재 삼성전자 제품이 법원의 결정으로 판매되지 않는 곳은 한 곳도 없다. 삼성전자도 아이폰4S 등을 두고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지만 판매금지까지는 얻어내지 못했다.

○파국 전 합의 가능성 높아

미국 법원과 ITC의 재판은 오는 6월부터 진행된다. 삼성전자와 애플은 각각 지난해 6월과 7월 ITC에 특허침해를 이유로 상대 회사의 제품 수입 금지를 요청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파국을 막기 위한 협상 가능성도 무르익고 있다.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가 사망한 이후 애플은 특허 공세에서 한 발을 빼고 있다. 최고경영자(CEO)인 팀 쿡은 특허소송을 끝까지 진행하기보다는 타협하는 쪽으로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다. 비즈니스위크 등 외신들은 애플과 삼성전자 최고위 경영진들이 특허 분쟁 타결을 위한 논의를 최근 가졌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애플이 삼성전자에 지급해야 하는 통신표준특허 로열티를 낮추기 위해 특허침해 소송을 시작했다는 분석도 있다. 양측의 로열티 협상이 타결되면 특허소송도 자연스럽게 마무리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