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中부양책 포인트…'뉴딜'과 '레이거노믹스' 논쟁
요즘 금융시장에서는 중국 정부가 경기를 살리기 위해 ‘중국판 뉴딜정책’을 추진하기보다는 오히려 ‘중국판 레이거노믹스’가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 논쟁이 일고 있어 향후 정책방향이 주목되는 상황이다.

당초 예상과 달리 올 1분기 성장률이 8.1%로 낮게 나옴에 따라 단기적으로 ‘경착륙(hard landing)’과 중·장기적으로 ‘중진국 함정(middle income trap)’에 빠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재차 제기되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논쟁이다.

뉴딜정책은 1930년대의 혹독한 경기침체 국면을 극복하기 위해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추진한 일련의 정책을 말한다. 1930년대 미 경기는 유효 수요가 절대적으로 부족함에 따라 물가와 성장률이 동시에 급락하는 디플레이션과 대규모 실업사태로 대변되는 대공황을 겪었다.

뉴딜정책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것은 존 메이너드 케인스다. 케인스 이론의 특징은 △상품시장에서 금리에 대한 소비와 투자의 비탄력성 △화폐시장에서의 투기적 수요와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 △노동시장에서 근로자의 화폐환상(money illusion)과 임금의 하방경직성이 존재한다는 게 골자였다.

한 나라의 경기가 이런 상황에 놓여 있을 때는 정부가 직접 나서 통화정책보다는 재정지출을 통해 부족한 유효수요를 보전해 줘야 경기가 회복될 수 있다고 본 것이 케인스의 구상이었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한 첫 작품이 뉴딜정책이었다. 최소한 1970년대까지 케인스 이론에 의한 정책 처방은 경기부양책으로 매우 적절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서면서 미국은 경기가 침체되고 물가가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새로운 양상을 띠었다. 이런 상황에 직면해 케인스 이론이 한계를 보이자 새로 등장한 것이 레이거노믹스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中부양책 포인트…'뉴딜'과 '레이거노믹스' 논쟁
레이거노믹스는 경기를 살리기 위해 총수요보다는 총공급 측면이 강조돼야 하며, 이를 위해 조세체계를 개편하고 정부 개입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해법을 제시했다. 레이거노믹스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사람은 아더 래퍼다. 래퍼는 한 나라의 세율이 적정 수준을 넘어 지나치게 높을 때는 오히려 세율을 낮춰주는 것이 경제주체들의 창의력을 높여 경기와 세수가 동시에 회복될 수 있다는 ‘래퍼 효과(Laffer effect)’를 강조했다.

레이거노믹스의 본질은 정부가 미리 짜여진 수요에 맞춰 경기를 부양하는 뉴딜정책과 달리 경제주체들에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갖게 하고 잃어버린 활력을 어떻게 높이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이를 위해 단기적인 경기부양책에 의존하기보다는 감세와 규제 완화, 기업중시 정책 등을 권고했다.

중국은 어떤가. 아직까지 통화 공급을 늘리면 금리가 내려가는 것으로 봐서는 유동성 함정에 처해 있다고 판단하기 힘들지만 금리를 내리더라도 종전처럼 소비와 투자가 늘지는 않고 있다. 임금은 빠르게 하방 경직적으로 변하는 추세다. 얼핏 보기에는 케인스적 상황과 비슷하기 때문에 중국 정부가 지급준비율 인하 등과 같은 뉴딜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경기 둔화는 단순히 유효 수요가 부족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현재 중국 경제는 외연적 성장단계에서 내연적 성장단계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심한 성장통을 겪고 있다. 외연적 성장단계란 사회주의 국가들이 성장 초기 노동 등 생산요소의 양적 투입을 통해 성장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내연적 성장단계란 시장경제체제 도입, 기술혁신 등을 통해 생산요소와 경제시스템의 효율성을 제고시켜 성장하는 단계를 의미한다.

더욱이 공업화도시화의 진전으로 농촌의 잉여노동력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어 중국의 ‘루이스 전환점(Lewisian tuning point)’ 도달 여부가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다. 루이스 전환점이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루이스(W A Lewis)가 제기한 개념으로, 개발도상국에서 농촌 잉여노동력이 고갈되면 임금이 급등해 성장세가 둔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특정국이 루이스 전환점에 이르면 그때부터 인력 수요와 공급 간의 불일치로 노동자 임금이 급등하면서 ‘고비용-저효율’ 구조가 정착하는 것이 전형적인 패턴이다. 대외적으로도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유치 단계에서의 장점을 상실하고 높아진 경제 위상에 맞게 내수시장이 발전하지 않음에 따라 교역상대국과 마찰을 자주 빚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뉴딜정책과 레이거노믹스의 복합처방이 필요하다. 요즘 들어 국제금융시장에서 중국 정부가 모색하고 있는 경기부양책 효과가 종전만 못하고, 중국 증시 앞날에 대한 시각이 밝지 않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중국 경제와 증시가 다시 한번 도약하기 위해서는 종전과 다른 획기적인 정책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뉴딜과 레미거노믹스식의 복합적인 처방은 비단 중국 경제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 경기가 완전히 회복되기 전에 인플레이션 우려가 제기되는 미국 경제와 디플레이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본 경제, 선거 등을 의식해 다시 좌파 성향이 강화되는 우리 경제에도 필요한 정책 방향이다.

한상춘 <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