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부터 은행에 통담보 안내도 된다
서울에 사는 A씨는 5년 전 은행에서 2억원의 주택담보대출을 받았다. 자세한 설명을 듣지 못한 채 은행 창구 직원의 권유에 따라 5억원짜리 주택을 통담보로 제공했다. 포괄근저당 설정에 동의한 것이다. 담보로 빌린 돈뿐만 아니라 신용대출, 카드 빚, 보증 등 사실상 모든 채무에 담보를 제공했다.

이후 A씨는 대출금을 성실히 상환해 왔지만 최근 날벼락을 맞게 됐다. A씨가 보증을 서 준 친구가 대출을 연체해서다. 은행은 포괄근저당이 설정돼 있다는 이유로 5억원이 넘는 A씨의 주택을 압류했다.

금융당국은 2010년 은행법을 개정해 개인과 법인에 대한 은행의 포괄근저당 요구를 금지하는 대신 ‘담보제공자에게 편리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만 예외를 인정하도록 했다. 하지만 일부 은행들은 예외조항을 이용해 고객들에게 포괄근저당 설정을 계속 권유, 동의를 받아 왔다. 법이 개정됐지만 A씨와 같은 피해사례가 잇따르고 있는 이유다.

금융 당국은 이처럼 근저당 설정과 관련해 담보제공자에게 과도한 책임을 지우거나 예상치 못한 재산상의 피해를 끼칠 수 있는 불합리한 제도와 관행을 손질하기로 했다. 은행들은 하반기부터 개인 채무자에 대한 포괄근저당 설정을 아예 요구할 수 없게 된다. 이에 따라 하반기부터 대출자들은 은행에서 건별 담보제공(한정 근저당)을 하게 된다.

또 3자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린 사람은 담보제공자의 동의가 없으면 대출한도가 남아 있더라도 추가 대출을 받을 수 없다. 금융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은행의 근저당 제도 개선방안’을 15일 발표했다.

우선 신규 대출뿐만 아니라 만기연장·재약정·대환과 같은 기존 대출을 갱신하는 경우에도 은행은 개인을 대상으로 한 포괄근저당을 요구할 수 없게 된다.

금융 당국은 만기가 남아 있는 기존 포괄근저당에 대해선 은행들이 일반근저당(한정·특정)으로 전환토록 유도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90조원에 달하는 포괄근저당 설정 가계대출은 순차적으로 일반근저당 대출로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여신거래가 많은 법인의 경우 은행이 채무자의 동의가 있을 때만 포괄근저당을 설정할 수 있도록 했다.

한정근저당의 경우엔 빚을 갚지 못했을 때 처분당하는 담보 종류를 최소화하도록 했다. 은행들이 한정근저당의 담보 범위를 과도하게 확대 적용, 사실상 포괄근저당처럼 활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부채 상환으로 근저당이 사실상 소멸됐으나 말소되지 않은 등기를 다른 근저당 등기로 사용하는 은행들의 ‘등기유용’도 개선하기로 했다. 대출상환시 은행은 근저당의 소멸·존속 여부에 대한 담보제공자의 의사를 반드시 확인하도록 했다.

3자가 담보를 제공하는 경우 담보제공자가 빚을 낸 사람의 채무상황을 알 수 있도록 은행이 반드시 안내하도록 했다. 특히 채무자가 만기를 연장하거나 추가대출을 받을 때는 담보제공자의 동의를 꼭 받도록 했다.

금융감독원은 은행, 학계 등과 함께 근저당 관행 개선을 위한 실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올 상반기 내로 은행내규와 약관을 개정할 예정이다. 금감원의 은행업감독 규정도 올 3분기까지 바꾼다.


◆ 포괄근저당

은행이 하나의 저당으로 모든 채무(대출·카드빚·어음·보증 등)에 대해 담보권을 갖는 것. 한 가지 채무라도 변제되지 않으면 담보가 통째로 넘어갈 수 있어 은행에 지나치게 유리하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