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선비들이 즐겨 그린 문인화는 채색화와 함께 근·현대 한국화의 양대 산맥을 이뤘다. 1970년대 이후 산정 서세옥 화백(83)이 현대적인 문인화풍을 개척했고 유산 민경갑(79)과 일랑 이종상 화백(74)은 현대적 한국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한국화의 현대적 변용을 이끈 원로화가 3명의 작품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 13~22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로비의 한경갤러리에서 펼쳐지는 ‘서세옥·민경갑·이종상-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3인3색’전에는 전통화풍을 기반으로 한국미술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 20여점이 걸린다.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후학 양성에 힘쓴 이들의 작품은 ‘한국화를 빛낸 화사(畵師)’다운 운치를 더해준다.

5만원 지폐의 신사임당과 5000원권의 율곡 이이 초상화를 그린 일랑은 화력 50년의 탄탄한 기량과 다양한 실험정신을 녹여낸 독도와 한려수도 그림 4점을 내보인다. 10호 크기의 ‘독도’는 40년 가까이 독도문화심기운동을 펼친 그의 열정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먹물을 번져나게 하는 발묵의 맛과 한지의 질감을 살린 공간감이 독특하다.

광주비엔날레 이사장을 지낸 일랑은 서구 미술 사조와 양식이 물밀듯 들어오던 시기에 휩쓸리지 않고 우리 화풍을 지킨 선구자로 꼽힌다. 1997년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 지하공간인 카루젤 샤를르 5세홀 성벽 뒤에 70m짜리 장지벽화 작품을 전시해 세계인을 사로잡았다. 최근에는 장지에 일획으로 내려 그은 극단적인 추상미의 ‘원형상’ 작업과 독도 그림에 열중하고 있다. 그는 “한국미술 속의 고구려 원형 같은 생명체를 오늘의 조형의식 속에서 재발견해야 한다”고 말했다.

1만권의 책을 읽고 한시를 자유자재로 짓는 전통 한국화가 산정의 작품도 10여점 나온다. 그의 ‘강산무진도’에는 병풍 같은 산세와 시원한 강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멀리서 보면 큰 덩어리의 파스텔로 그린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문인화풍의 맛이 그대로 살아있다.

20세 때 국전에서 ‘꽃장수’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산정은 1955년 26세 때 서울대 교수로 부임해 주목받았다. 1970년대에는 단순한 구성으로 자연을 화폭에 담았고, 최근에는 한국화에 극도의 추상성을 더한 ‘점의 변주’ ‘선의 변주’ 시리즈에 몰두하고 있다.

1960년대 한국화로는 처음으로 국전에 추상작품을 출품, 최연소 추천작가로 데뷔한 유산의 꽃과 산 그림 7점도 소개된다. 한국화이면서 서양화 같은 그의 꽃 그림은 빨강 노랑 초록의 원색을 통해 색다른 화려함을 선사한다. 중국의 수묵화풍과 다른 한국화의 새로운 해법을 제시한 그는 화업 50여년 동안 산과 꽃을 그리며 전통 수묵화의 고정관념을 깼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박정준 세종화랑 대표는 “한국화 대가들의 예술 세계와 작품 활동을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을 모았다”며 “경기 침체를 고려해 작품가를 20~30% 낮춰 판매한다”고 말했다. (02)360-4114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