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용의자 지문 즉시 조회 안돼 놓치는 일 다반사
‘수원 20대 여성 토막 살해사건’의 용의자 오원춘 검거 때 출동했던 한 경찰은 “그날을 떠올리면 지금도 식은 땀이 난다”며 “조선족인 오원춘이 범행 직후 현장을 떠났다면 경찰이 현장 지문을 채취·조회하는 사이 수사망을 벗어날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외국인 지문 정보는 법무부(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가 갖고 있어 경찰이 사건 발생 즉시 지문을 조회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외국인 범죄가 늘고 있지만 수사당국의 대응체계는 이처럼 허점 투성이다. 수사기관 간 원활한 공조체계도 시급하다.

◆경찰·법무부, 단속권한 ‘따로따로’

외국인 범죄 관련 주체는 검찰과 경찰, 법무부 출입국 외국인정책본부 등이다. 큰 틀에서 보면 △외국인 출입국 심사 △국내 거주 외국인 동향 조사 및 첩보활동 △불법체류자나 국내에서 범죄를 저지른 외국인에 대한 강제퇴거 조치 등 외국인 관리 전반에 관한 업무는 출입국 외국인정책본부가 맡는다. 나머지 기관들은 실제 발생한 범죄사건의 수사를 담당한다. 이 때문에 불법체류자에 대한 신고 및 민원을 가장 많이 접수하는 경찰은 살인·강도 등 형사사범을 제외하고는 불법체류자를 수사하거나 형사처벌할 수 없고, 외국인정책본부에 사건을 바로 인계해야 한다.

서울지역 한 경찰서 관계자는 “불법체류자 신고를 받아봤자 수사 권한이 없고 법무부로 사건을 넘겨주기 바쁘다보니 경찰로선 ‘내 일이 아니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종화 경찰대 경찰학과 교수는 “유럽처럼 출입국 심사 때부터 경찰이 통제하는 게 범죄 예방에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제안했다.

◆외국인 지문감식 오후 6시 이후 ‘불가’

빠른 범죄 사건 해결을 위해 경찰과 법무부 간 수사 공조가 절실하지만 현실은 겉돌고 있다. 경찰은 범죄 현장에서 외국인 지문을 확보했을 경우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지문 감식을 의뢰한 뒤에야 지문의 주인을 찾을 수 있다. 감식 결과를 받는데도 보통 이틀이 걸린다. 오후 6시 이후에는 야간 당직자를 따로 두지 않기 때문에 감식 의뢰조차 할 수 없다. 반면 경찰청 과학수사센터는 24시간 가동되며 ‘지문자동검색시스템(AFIS)’을 통해 현장에서 자체 감식이 가능하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관계자는 “불법체류자가 다른 사람의 외국인등록증을 제시해도 지문 정보가 없어 그냥 보내는 일이 다반사”라고 털어놨다.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경찰은 지난해 법무부에 외국인 지문 정보를 경찰청에 이전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법무부는 “인권 침해 소지가 크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수사 목적상 국내 거주 외국인의 전화번호, 지문 정보 등을 쉽고 빠르게 공유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인 범죄 전문수사인력 부족

외사(外事)분야 수사전문가들은 “외국인 범죄의 경우 범죄자의 체류 조건과 자국의 문화적 요인에 따라 범죄 성향·행태가 달라질 때가 많다”며 전문 수사 인력 양성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전국 각 지방경찰청 산하에 외국인 관련 강력사건을 전담하는 국제범죄수사대가 있지만, 대부분 총기·마약·위조지폐·외국환 분야에 치중할 뿐이다. 살인·강간·강도 같은 사건은 각 지역 경찰서가 맡는다. 이수정 교수는 “외국인들의 범죄 성향과 양태를 분석하기 위해선 그들의 사회·문화적 요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