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모씨(58)는 2009년 A조합이 발행한 액면금 8억원 수표를 채권자 김모씨(53)에게 채무 변제조로 건넸다. 전씨는 수표를 주는 대신 이자 감면 및 채권 관계서류를 반환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김씨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수표만 챙겨 자리를 떴다. 그러자 전씨는 같은 날 A조합 측에 ‘수표를 분실했다’고 허위 신고했고, 법원에서 해당 수표를 무효로 하는 제권판결을 받은 다음 A조합에서 수표금 8억원을 바로 지급받았다. 반면 8억원 수표를 소지하고 있던 김씨는 전씨의 분실 신고로 수표금을 지급받지 못하다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뒤 A조합과 전씨 등을 상대로 “8억원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고법 민사16부(부장판사 최상열)는 김씨가 낸 제권판결에 대한 불복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하며 “A조합은 전씨와 김씨에게 8억원을 변제할 책임이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8일 밝혔다. 이미 전씨에게 8억원을 지급한 A조합 입장에서는 또다시 김씨에게 8억원 중 일부를 지급해야 하는 ‘이중 지급’ 책임을 지게 된 것이다.

재판부는 사무 처리 과정에서 A조합의 과실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조합의 업무방법서에는 제권판결 선고 후 불복 소송이 제기될 수 있는 기간(1개월)이 지난 후에 분실 신고 수표 액면금을 지급하도록 돼 있는데, A조합은 제권판결 선고 당일 지급했다”며 “수표를 소지한 김씨가 관련 상황을 알려달라고 요청했는데도, 제권판결 등이 진행될 수 있다는 점을 사전에 설명해주지 않은 점도 과실”이라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