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구찌 코치 타이틀리스트 등 해외 유명 브랜드의 국내 판매가격을 낮추기 위해 병행수입을 활성화하기로 했다. 이들 제품의 가격이 다른 나라보다 비싼 원인이 소수 업체가 수입을 독점하는 폐쇄적인 시장구조에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정부는 6일 서울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에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물가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상표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병행수입을 활성화하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우선 규모가 영세한 병행수입업체의 자금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과세 가격의 150%인 통관담보금을 낮추기로 했다. 통관담보금은 상표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제품이 수입될 경우 세관이 정식 수입업자에게 정품 여부를 조회하기 위해 부과된다.

또 독점판매권을 가진 수입업체가 병행수입품의 통관 보류를 요청할 경우 심사 기간도 현행 15일에서 10일로 단축하기로 했다. 독점업체가 병행수입품을 취급하는 판매업자에게 제품 공급을 중단하거나 불리한 가격을 매기는 등의 부당행위도 단속하기로 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수입품의 유통시장 구조를 독과점에서 경쟁체제로 바꿔보겠다는 게 이번 대책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병행수입이 활성화되지 않은 원인으로 지적돼온 제품의 진위 여부와 사후 서비스(AS)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안도 해소하기로 했다. 적법하게 통관 절차를 거친 물품에 QR코드를 부착하는 통관인증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병행수입품과 일반 수입품의 가격과 품질, AS에 대한 정보도 비교해 제공할 계획이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그동안 병행수입 제품이 이른바 ‘짝퉁’ 또는 ‘B급’으로 취급받아온 것을 보완하기 위한 대책”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특히 대형마트나 온라인 쇼핑몰이 병행수입시장에 적극 참여해줄 것을 요청하기로 했다. 기존 수입 채널인 백화점에 맞서 경쟁구도를 만들겠다는 의도다.

정부는 의류 잡화 화장품 위주로 약 3393개 품목이 병행수입되면서 시장 규모만 연간 1조5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제품의 희소성과 유통마진, 소비자 선호도에 따라 다르지만 병행수입 제품의 가격이 정식 수입채널보다 보통 15~50%가량 낮다고 보고 있다.

정부 방침에 대해 유통업체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은승 롯데마트 글로벌소싱팀장은 “우수한 외국 상품을 병행수입 방식으로 저렴하게 들여와 국내에 싸게 공급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며 “앞으로 자유무역협정(FTA) 효과 등과 맞물려 병행수입을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마트 관계자도 “수입 절차가 간단해지면 병행수입이 더욱 확대돼 해외 상품 가격 인하에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병행수입

외국에서 유통되는 진품을 국내 독점판매권을 가진 업체의 수입 경로와는 다른 경로로 수입해 국내에 판매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대개 해외 판매장이나 제3국의 독점 판매업체를 통해 들여온다. 정부는 수입품 가격 인하를 위해 1995년 11월부터 상품 출처를 밝히고 품질 보호 기능을 저해하지 않는 경우에 한해 병행수입을 허용하고 있다.

이심기/송태형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