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등 4대 공기업 빚 1년간 30조 늘었다
정부가 재정건전성 유지를 최대 과제로 삼고 있는 가운데 공기업들의 빚이 빠르게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한국전력공사 LH(한국토지주택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수자원공사 등 자산 순위 4대 공기업의 부채는 지난 한 해 동안 무려 30조원 가까이 급증했다. 공기업 경영이 방만한 탓도 있지만 정부가 명목상의 재정건전성을 위해 자신의 부담을 일방적으로 떠넘긴 결과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공기업 부채, 국가부채의 절반

5일 한국경제신문이 주요 공기업의 지난해 재무제표(연결기준)를 분석한 결과 한전 LH 가스공사 수자원공사 등 4대 공기업의 총 부채는 253조7826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224조1477억원)보다 29조6349억원 급증(13.2%)한 것이며 지난해 말 기준 국가부채(434조원)의 절반이 넘는 규모다.

한전의 재무 상태가 가장 악화됐다. 10조4226억원의 부채가 추가돼 전체 빚이 82조6639억원으로 늘어났다. LH의 부채도 9조446억원 증가한 130조5712억원으로 불었다. 가스공사(4조9450억원)와 수자원공사(4조4956억원)도 불과 1년 만에 5조원 가까이 빚이 불어났다.

부채비율(자기자본 대비 부채의 비율)도 덩달아 높아졌다. LH의 부채비율은 468.0%로 전년(461.2%)보다 더 올랐다. 빚이 자본보다 4.6배나 많다는 얘기다. 가스공사의 부채비율도 301.9%에서 364.0%로 급등했다. 민간기업으로 치면 ‘투기등급’에 해당되는 수준이다. 수자원공사와 한전은 현재 200% 미만이지만 상승폭이 가파르다는 점에서 우려할 만하다. 수자원공사의 부채비율은 2010년 75.7%에서 116.0%로, 한전도 126.1%에서 153.6%로 급격히 높아졌다.

○“국책사업 안할 수도 없고…”

공기업들은 또다시 “경영이 방만하다”는 질타를 받을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억울하다”는 속내도 감추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정부의 물가정책에 발목을 잡힌 한전이다. 정부는 작년 연료비가 36% 올랐는데도 물가상승을 우려해 전기요금은 9.6%만 올렸다. 원가보다 낮은 가격에 팔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때문에 2010년에 2조2599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던 한전은 지난해 685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가스공사도 원가에 못 미치는 요금 수준으로 경영상태가 악화됐다. 지난해 정부가 액화천연가스(LNG) 도입단가 등으로 도시가스 요금을 조정하는 원료비 연동제를 중단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가격인상 요인을 원가에 제때 반영하지 못한 미수금은 4조4982억원으로 전년보다 3280억원가량 늘었다.

대규모 국책사업도 공기업의 부채를 키웠다. 8조원의 빚이 있었던 수자원공사는 4대강 사업비 3조1500억원을 끌어들이느라 큰 빚을 질 수밖에 없었다. LH도 전체 부채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부담이 큰 임대주택사업규모가 늘어나면서 타격을 입었다.

문제는 이 같은 양상이 다른 공기업들에도 전방위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는 지난해 빚이 67.5%(2172억원)나 급증했고 인천항만공사도 51.7%(1256억원) 늘었다.

유경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정사회정책연구부장은 “물가대책 등으로 정부의 정책적 부담이 상당 부분 공기업 경영악화로 전가된 측면이 있다”며 “공기업이 부실화되면 결국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하기 때문에 공기업 부채를 이대로 놔둬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서보미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