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매춘' 활개치는 까닭은 '한국인의 이중성'때문 … 강준만 교수 새책서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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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주고 성을 사는 행위를 금지한 성매매방지특별법이 시행된 지 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은 '매춘 천국'이다.
번화가 골목 어귀마다 가득 뿌려진 전단에서 사랑을 '세일'하는 마사지사로 변신한 여대생을 찾을 수 있는가 하면 하루가 멀다하고 교묘한 수법으로 포장한 유사 성행위 업소가 등장한다.
최근 대한민국 매춘의 역사와 관련해 신간이 나왔다. 다작으로 유명한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저서 '매매춘, 한국을 벗기다'(사진)에서 성매매의 어제와 오늘을 짚어보며 성 산업이 한국의 근대화와 궤를 같이해왔음을 밝혀낸다.
'입시전쟁 잔혹사', '강남 좌파' 등의 저서를 통해 한국 사회를 예리하게 들여다본 저자는 지금까지 비판을 받아온 '파는 사람(성 매매 종사자)'이 아닌 '사는 사람(성 매매 이용자)'의 시각에서 이 문제를 들여다보며 '한국인의 이중성'에 주목한다.
저서의 제목으로 '매매춘(賣買春)' 용어를 사용한 것은 '파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사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국의 성 산업이 국가의 방조 혹은 적극적인 개입 아래 성장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조선 총독부든, 미 군정이든, 군사 독재정권이든 성매매 여성은 권력이 필요로 할 때 언제나 꽃을 피워주는 존재였다는 것.
저자는 구한말 일본인 거류지를 중심으로 일제가 공창을 들여온 이래 풍류 위주였던 한국의 전통 기생 문화가 한국 남자의 영혼을 좀먹는 성매매로 변질했다고 주장한다.
또 1970년대 경제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성매매가 국가의 주요 수출 품목이 됐다고 말한다. 저서에는 "박정희 정권은 여행사들을 통해 '기생 관광'을 해외에 선전했을 뿐 아니라 문교부 장관은 1973년 6월 매매춘을 여성들의 애국적 행위로 장려하는 발언을 했다"고 지적했다.
1970년대 이후 주춤했던 외국인 기생 관광이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다시 꽃을 피우고 미아리 텍사스촌, 천호동 텍사스촌, 청량리 588등 소위 3대 집창촌이 들어서며 성 산업은 전성기를 맞이했다.
인터넷의 도입은 1990년대 후반 성매매에 '날개'를 달았다.
저자는 이처럼 성매매가 발달해온 한국사회에서 일반 시민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성 산업에 종사하는 수천 혹은 수만이 될지 모르는 '그녀'들의 목소리는 무시당하고 그저 '매춘부'로 취급받는다. 한국 사회에서 '그녀'들의 인권은 없다"고 주장한다.
저서는 적절한 뒷받침도 없이 정략적으로 밀어붙인 성매매방지특별법을 실패로 진단하고, 이런 현상을 '양지에선 근엄, 음지에선 게걸'이라는 '한국인의 이중성'으로 설명하고 있다.
한경닷컴 김소정 인턴기자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
번화가 골목 어귀마다 가득 뿌려진 전단에서 사랑을 '세일'하는 마사지사로 변신한 여대생을 찾을 수 있는가 하면 하루가 멀다하고 교묘한 수법으로 포장한 유사 성행위 업소가 등장한다.
최근 대한민국 매춘의 역사와 관련해 신간이 나왔다. 다작으로 유명한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저서 '매매춘, 한국을 벗기다'(사진)에서 성매매의 어제와 오늘을 짚어보며 성 산업이 한국의 근대화와 궤를 같이해왔음을 밝혀낸다.
'입시전쟁 잔혹사', '강남 좌파' 등의 저서를 통해 한국 사회를 예리하게 들여다본 저자는 지금까지 비판을 받아온 '파는 사람(성 매매 종사자)'이 아닌 '사는 사람(성 매매 이용자)'의 시각에서 이 문제를 들여다보며 '한국인의 이중성'에 주목한다.
저서의 제목으로 '매매춘(賣買春)' 용어를 사용한 것은 '파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사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국의 성 산업이 국가의 방조 혹은 적극적인 개입 아래 성장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조선 총독부든, 미 군정이든, 군사 독재정권이든 성매매 여성은 권력이 필요로 할 때 언제나 꽃을 피워주는 존재였다는 것.
저자는 구한말 일본인 거류지를 중심으로 일제가 공창을 들여온 이래 풍류 위주였던 한국의 전통 기생 문화가 한국 남자의 영혼을 좀먹는 성매매로 변질했다고 주장한다.
또 1970년대 경제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성매매가 국가의 주요 수출 품목이 됐다고 말한다. 저서에는 "박정희 정권은 여행사들을 통해 '기생 관광'을 해외에 선전했을 뿐 아니라 문교부 장관은 1973년 6월 매매춘을 여성들의 애국적 행위로 장려하는 발언을 했다"고 지적했다.
1970년대 이후 주춤했던 외국인 기생 관광이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다시 꽃을 피우고 미아리 텍사스촌, 천호동 텍사스촌, 청량리 588등 소위 3대 집창촌이 들어서며 성 산업은 전성기를 맞이했다.
인터넷의 도입은 1990년대 후반 성매매에 '날개'를 달았다.
저자는 이처럼 성매매가 발달해온 한국사회에서 일반 시민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성 산업에 종사하는 수천 혹은 수만이 될지 모르는 '그녀'들의 목소리는 무시당하고 그저 '매춘부'로 취급받는다. 한국 사회에서 '그녀'들의 인권은 없다"고 주장한다.
저서는 적절한 뒷받침도 없이 정략적으로 밀어붙인 성매매방지특별법을 실패로 진단하고, 이런 현상을 '양지에선 근엄, 음지에선 게걸'이라는 '한국인의 이중성'으로 설명하고 있다.
한경닷컴 김소정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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