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운동이 치열했던 1980년대 초중반에 대학생활을 했지만 나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오히려 그땐 그래도 낭만이 있었지’ 하고 미소짓게 된다.

그 시절 나에게 대학생이 된다는 것은 짧은 머리와 검정 교복에서 벗어나 내 나름대로의 멋을 부릴 수 있다는 의미도 있었고 다방이나 카페에서 여학생들과 당당하게 만날 수 있다는 뜻도 됐다. 아마 전문적인 학문 탐구 같은 것은 순위가 한참 밀려 있었을 것이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 학교 앞에는 다방과 카페가 공존하고 있었다. 사실 그때의 다방과 카페는 이름만 달랐지 별 차이는 없었던 걸로 기억하지만 독특하고 세련된 인테리어와 이름을 가진 카페들이 점점 다방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우리는 그런 곳에서 맛도 잘 모르는 쓴 커피를 마시며 설레는 만남을 갖기도 했고 스터디 그룹의 아지트로 삼기도 했으며 때로는 통째로 빌려 어설픈 장사를 벌이기도 했다. 프랑스어로 커피 혹은 다방이라는 뜻의 카페(cafe)가 한국에서 고급스럽고 세련된 분위기의 차 마시는 공간이 된 것도 이 무렵부터인 것 같다.

‘삐삐’도 휴대폰도 없던 시절, 보름에 한 번 나오는 학보를 주고받으며 서로 짧은 메시지를 전하고, 5월 축제 때면 우리 학교와 별다를 것 없는 곳이건만 굳이 여대를 방문해 보기도 했다. 또 친구들과는 우리가 아니면 이 사회를 이끌어 갈 인재가 없는 양 밤늦도록 토론을 하던 그 모든 기억이 이젠 미소 지으며 떠올리는 추억이 됐다. 그리고 나에겐 그 추억들과 함께 커피향이 남아 있다. 부지런히 챙겨 온 학보를 보며 마시던 학교 자판기 커피의 진한 맛, 촌스러운 5 대 5 미팅에서 처음 맛본 비엔나 커피의 달콤함, 그리고 MT의 기억과 함께하는 새벽 커피의 구수한 맛은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처음 커피사업을 시작할 무렵엔 전문지식 없이 이런 커피의 좋은 추억들만 갖고 있었다. 그런데 사업을 하면서 커피에 대해 알아가고 공부를 할수록 깊이를 알 수 없는 커피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사만큼이나 다양한 커피의 맛과 종류 때문인지도 모른다.

요즘엔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을 대변하듯 테이크아웃 커피가 유행하고 있다. 이제는 한 손에 커피를 들고 거리를 걷거나 출근하는 모습이 낯설지가 않다. 유명한 TV시리즈와 영화의 영향이 크겠지만 우리는 ‘뉴요커’라고 하면 쉽게 스타벅스 커피와 애플 맥북을 함께 떠올린다. 이렇듯 커피는 이제 우리 현대문화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커피사업을 하면서 항상 문화와 연결지으려 노력한다. 더불어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더욱 책임감을 느낀다. 그래서 훗날 누군가의 추억 속에 우리 이디야커피가 함께하는 즐거운 상상을 하며 오늘도 힘찬 출발을 한다.

문창기 < 이디야커피 대표 ceo@ediy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