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공장ㆍ無창고 TV 가격파괴…TG삼보 '한국판 비지오' 꿈꾼다
“300명도 안 되는 직원으로 TV를 만들겠다고 하니 처음에는 모두들 반대했습니다. 어떻게 삼성과 LG를 이기겠냐고 의아해했지만 소비자들이 정말 원했기 때문에 저지를 수 있었습니다.”

손종문 TG삼보컴퓨터 사장(44·사진)은 TV 사업 진출을 결정한 2010년을 이렇게 기억했다. 사실 그에게 TV는 지긋지긋한 사업이었다. 손 사장은 부산대에서 컴퓨터공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전자통신연구원(ETRI) 연구원으로 일하다 2000년에 TG삼보의 대주주였던 셀런연구소에 합류하며 TG와 인연을 맺게 됐다. 이후 2004년부터 TV개발팀을 만들어 TV 사업 진출을 검토했다. 이 과정에서 “TV 사업을 하자”고 결론을 낸 것만 두 차례. 늘 막판에 발목을 잡는 건 “시장에서 원하냐”였다. “삼성, LG보다 싼 가격에 만들 수 있느냐”는 의구심도 결심을 흔들어 놨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수십 차례 시장 조사를 했는데 결론은 하나같이 ‘TV 사업 강추’였다. 안방에 놓을 ‘세컨드 TV’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고 1~2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값싼 TV를 원하는 소비자층이 두터워져서다. 무엇보다 2010년부터 TV의 핵심 부품인 패널값이 떨어지면서 가격 거품을 걷어낼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 때마침 작년 초 이마트로부터 “TV 사업을 같이하자”는 제의도 받았다.

작년 10월 TG삼보가 이마트와 손잡고 만든 이른바 ‘반값 TV’는 이렇게 8년간의 산고를 겪은 끝에 탄생했다. 32인치 LED(발광다이오드) TV가 49만9000원이었고 42인치 LED TV는 76만9000원이었다. 같은 사양의 삼성·LG TV보다 20만~30만원가량 싸다.

손 사장은 “사람들은 그냥 저가 TV붐에 맞춰 만든 ‘반짝 상품’이라고 생각하지만 오랜 숙원 사업이었다”며 “삼성 LG보다 30만원 이상 싸게 만들기 위해 죽을 힘을 다했다”고 토로했다.

손 사장이 밝힌 가격 인하 비결은 이랬다. 우선 그의 표현대로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것만 하는 ‘상생형 역할 분담’이다. TG삼보는 TV 개발과 디자인만 하고 판매는 이마트에 맡겼다. 패널 제조는 대만 훙하이그룹 계열인 CMI에, TV 조립은 대만 모 전자업체에 각각 외주를 줬다. 아웃소싱 덕에 290여명의 직원으로 PC도 만들고 TV도 생산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무(無) 재고’도 원가절감의 핵심 요인 중 하나다. 창고를 만들어 재고 쌓아두는 데만 한 해에 수십억원이 드는 만큼 판매처(이마트)의 주문이 있을 때 두 달 내 TV를 생산하는 방법을 택했다. 소비자가 원할 때 언제든 살 수 있는 체제를 갖추기 위해서다. ‘땡처리’식으로 한 번에 300대씩만 파는 여느 ‘저가 TV’와는 다른 점이다.

손 사장은 이런 사업 모델을 대만 TV업체 비지오(VIZIO)에서 가져왔다. 그는 “비지오는 월마트 및 코스트코와 제휴해 유통비용을 줄이고 영업비용을 쥐어짜 미국 TV 시장을 장악했다”며 “비지오처럼 실속형 상품으로 한국에서 정보기술(IT) 전문 기업으로 커 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직원 수가 160명에 불과한 비지오는 저가형 LCD(액정표시장치) TV 위주로 판매해 북미 시장에서 20%대 점유율을 차지하며 삼성과 1위 경쟁을 벌이고 있다.

TG삼보가 ‘한국판 비지오’로 성장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TG삼보는 작년 10월 이후 맛보기 상품으로만 1만5000대 이상의 TV를 판매하며 저가 TV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손 사장에게는 숙제도 있다. 1년에 250만대가량 팔리는 국내 TV 시장에서 TG삼보의 PC 점유율(8%)만큼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과제는 회사 살리기다. TG삼보는 한때 연 매출이 4조원에 달했으나 2005년 법정관리를 맞으면서 2000억원대로 줄었다. 2008년 법정관리를 졸업했으나 2010년 다시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손 사장은 “새로 시작한 TV와 차량용 블랙박스 사업에서 성공해 올해 꼭 흑자전환을 이루겠다”고 강조했다.

정인설/강영연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