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규혁 LA 자동차 칼럼니스트 인터뷰

"기아 'K9'은 BMW와 닮았지만 다른 느낌 난다."

미국 로스엔젤레스(LA)에 거주하고 있는 권규혁 자동차 칼럼니스트(사진)는 3일 한국경제신문 온라인 미디어 한경닷컴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기아차 K9 디자인이 BMW와 닮았다는 네티즌들의 의견이 많다"는 기자의 질문에 이같이 밝혔다.

권 씨는 "K9은 스포티한 고급차를 추구하면서 본네트가 길고 트렁크가 짧은 비례감이 구현돼 자연스럽게 BMW 느낌이 나는 것" 이라며 "기아차가 디자인 과정에서 BMW를 의식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K9 측면 유리의 뒷쪽 끝부분이 꺾여 올라간 부분은 '호프마이스터킥'으로 불리는 BMW가 오래 전부터 쓰고 있는 디자인 요소" 라며 "최근 많은 자동차들이 이와 유사한 디테일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K9도 그중 하나지만 모서리를 둥글고 수직 부분을 길게 만들어 BMW와 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 씨는 명지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뒤 캘리포니아 패서디나에 위치한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인 스쿨인 아트센터디자인대학(ACCD, Art Center College of Design)에서 자동차 디자인을 공부했다. 현재 LA에서 자동차 저널리스트로 활동중이다.

"좋은 디자인은 차 기능 충실히 구현한 것"

자동차 디자인 작업에서 핵심은 무엇인지 묻자 "자동차 디자인은 보기에 좋으면서 자동차의 기능을 충실히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자동차 디자이너가 생각해야 할 요소들은 단순히 미(美)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생산성과 제조원가, 안전기준을 충족시켜야 하고 공기역학적인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차에 장착되는 엔진과 변속기, 서스펜션(현가장치) 등을 비롯한 모든 구성품이 제자리에서 제기능을 내도록 배치하면서도 그 위를 덮은 외형이 아름답도록 만드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에선 어떤 자동차 디자인이 인기 있는지를 질문하자 "앞서 가지도 않으면서도 트렌드에 뒤지지 않는 디자인이 일반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며 "너무 앞서가는 디자인은 '친구차'로 구경하기엔 좋겠지만 내 차로 사고 싶지는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미국 젊은 층이 선호하는 디자인 취향에 관해서는 "지역별로 차이가 나는데 대체로 동부와 서부지역에선 수입차에 대한 선호도가 높고, 중부 지역은 미국산 픽업트럭(포드 F-150)을 선호하는 경향도 있다"고 밝혔다.

최근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디자인 흐름에 대해선 "평균 신장의 증가로 인해 실내공간의 확보가 중요해졌다" 면서 "충돌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필라(Pillar·기둥)가 두터워지고 엔진룸이 작아지면서 측면에서 바라보는 차체의 비례감도 예전과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자동차에 적용되는 안전 규정이 매년 강화되고 새로운 조항이 추가되면서 디자인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면서 "연비와 친환경성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주행 저항을 줄일 수 있는 디자인이 중시되는 것도 하나의 추세"라고 덧붙였다.

"현대·기아차, 확고한 브랜드 이미지 만들어야"

권 씨는 한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현대차 아반떼와 기아차 K5에 대한 현지 미국인들의 반응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그는 "야후 오토에서 가장 자주 검색되는 세단이 '아반떼'이며 자동차 전문매체인 에드먼즈 닷컴에서도 검색 상위권에 올라있다" 며 "K5의 경우 아반떼만큼 자주 보이진 않지만 도로 위에서 존재감이 부각되는 스타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디자인의 경우 현대차는 자유곡선이 많이 들어간 플루이딕 스컬프쳐(Fluidic Sculpture, 유연한 역동성) 디자인으로, 기아차는 단순한 직선과 정형화된 곡선이 기조를 이루는 디자인으로 서로 다른 취향을 공략하고 있는 것은 꽤 좋은 전략이라고 그는 분석했다.

미국 운전자들 사이에 현대·기아차는 어떤 브랜드로 인식하고 있는지 묻자 "현대·기아차가 미국시장에서 중저가 대중차 브랜드로 확고한 지위를 구축한 것은 분명하다" 며 "예전에는 값이 싼 만큼 품질과 내구성은 물론 잔존가치도 떨어지는 차로 인식됐으나 최근 이런 부분이 많이 개선됐다"고 평가했다.

권 씨는 글로벌 시장에서 현대·기아차가 나아가야 할 과제도 제시했다.

그는 "생활용품으로의 '자동차' 측면에선 현대·기아차가 미국인 사이에 신뢰하고 구입할 수 있는 차로 자리 잡았다" 면서도 "현대차나 기아차 하면 딱히 떠오를만한 이미지나 철학이 없고 모터스포츠에 대한 투자도 적으며 다른 글로벌 메이커에 비해 역사도 짧아 기계적인 부분 말고는 콘텐츠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 권규혁은 누구?
LA에 거주하며 자동차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조선일보>에 '만화로 배우는 자동차 세상' 만화와 자동차 매거진 <자동차 생활>에 '자동차가 있는 풍경' 칼럼을 연재했다. 영국 디자인 뮤지엄이 선정한 <세상을 바꾼 50가지 자동차>(홍디자인 2010년)를 번역하고 감수했다.

한경닷컴 김정훈 기자 lenn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