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세금지옥 만들면 복지국가 멀어진다
조세피난처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높다. 미국은 낮은 세율과 강력한 예금비밀 보호막을 내세운 조세피난처 스위스로 자국민 예금이 빠져 나가는 사태를 막기 위해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좌파정권 수립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프랑스 부유층의 조세피난용 국적이탈도 급증하고 있다. 선박왕, 구리왕, 완구왕 등 국내에서 돈을 벌면서도 저세율국 거주자로 신분을 세탁해 ‘국적이 아리송한’ 사업가들로 인해 국세청의 신경이 곤두서 있다.

조세피난처의 영문 표기는 tax heaven인데 이를 ‘세금천국’으로 직역하는 것이 이해가 빠르다. 원래 세율이 아주 낮은 나라를 의미하지만 특정 국가를 기준으로 세금이 더 유리한 상대국이 바로 세금천국인 것이다. 고세율 세금지옥 국가에서는 과세소득을 저세율국으로 이전하려는 사업자와 이를 막으려는 과세당국의 다툼이 치열하다. 우리나라 국세청이 최근 국제거래 감시강화를 강조하는 것도 떨어진 세율경쟁력을 의식한 포석이다.

미국계 펀드 론스타는 10년 넘게 한국 국세청과 세금다툼을 벌이고 있다. 스타타워 빌딩 투자에서 발생한 거액의 양도차익에 대해 한국 내 고정사업장이 있는 것으로 판단해 양도소득세를 부과했는데 대법원은 법인세 부과가 타당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판결에 따라 양도소득세는 취소되고 법인세 과세가 새로 이뤄질 전망이다. 세무조사 과정에서 고정사업장이 존재했다는 다양한 증거가 드러나자 론스타는 외환은행 매각을 의식해 한국 내 흔적지우기에 나섰다.

하나금융과의 주식매각 협상과정에서도 임직원의 한국 입국을 철저히 금지시키고 김승유 회장을 영국으로 불러냈으며 심지어는 일본을 협상장소로 이용하기도 했다. 론스타는 한국에서 법인세를 내기보다는 거주국인 미국에서 투자이익으로 세금을 부담하는 것이 더 유리하기 때문에 세금없는 탈출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 해외 자회사와의 거래에 주목한 세무조사가 7개월 동안 실시됐다. 해외 각국에 광범위한 사업조직을 보유한 다국적기업의 경우 한국보다 저세율국에 소재하는 자회사에 낮은 이전가격으로 제품을 넘기면 한국 본사 이익은 줄고 해외 자회사 이익은 늘어난다. 결국 저세율국 자회사의 낮은 세율 때문에 전사적 세금부담은 줄어들게 된다. 삼성전자에 대한 집중적 세무조사를 통해 다른 대기업에도 자회사 거래를 통한 공격적 세무전략의 자제를 당부하는 국세청의 의도가 엿보인다.

선박왕 등과 론스타 및 삼성전자 사례는 세금지옥 국가의 세정운영 어려움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치열한 경제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세계 각국이 획기적 법인세 인하를 단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만 유독 정해진 세율인하조차 취소하고 인상의 역주행 코스를 밟고 있다. 총선과 대선이 겹치는 ‘정치의 해’를 맞아 선심성 복지공약이 난무하고 뒷감당을 위한 세금 추가 인상이 거침없이 터져 나온다. 법인세율을 올리면 외국인 국내투자는 급감하고 국내 기업의 사업장 해외이전도 가속화된다.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이익 줄이기’와 국내 기업의 ‘해외 자회사에 이익 몰아주기’도 성행할 것이다. 법인세와 소득세 인상이 세수증대 효과보다는 일자리 감소에 따른 중산층 붕괴와 실업에 따른 복지수요 폭증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복지국가는 좋은 일자리를 가진 건전한 중산층이 기반이다. 무상복지 재원을 위해 대기업과 고소득 계층을 타깃으로 세금을 올리면 투자 및 근로의욕 위축으로 불황을 자초할 위험이 크다. 일자리가 사라지면 건전한 중산층 형성도 물거품이 되고 남유럽 재정위기 사태처럼 복지기반도 일거에 무너지게 된다.

대기업과 고소득층 세율을 올려 복지천국을 만들겠다는 공약은 첨예한 국제경쟁을 감안할 때 위험천만의 모험이다. 상위 1%와 나머지 99%를 나누는 이간책도 중산층을 지향하는 국민을 깎아 내리는 정치적 선동이다. 국제적 인하 조류에 역행하는 법인세 인상은 우리 일자리를 경쟁상대인 세금천국 국가에 바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세금을 올려 복지천국을 만들겠다는 공약은 개그 코너 유행어 “야, 안돼!”가 제격인 저지 대상이다.

이만우 < 고려대 경영학 교수 / 객원논설위원 leemm@kore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