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라이 숙청…지금 중국선 무슨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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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 장기집권 걸림돌, '極左 실험' 보시라이 제거…'좌향좌는 안된다' 공감대
상하이방·태자당·공청단 연합
문화대혁명 부활의 싹…충칭모델에 '십자포화'
상하이방·태자당·공청단 연합
문화대혁명 부활의 싹…충칭모델에 '십자포화'
“중국이 왼쪽으로 갈 기회는 사라졌다.”
보시라이 충칭시 서기가 전격 해임된 데 대해 장밍(張鳴) 런민대 정치학과 교수는 16일 이렇게 말했다. 정치적 야망이 가득한 한 명망가의 몰락일 뿐 아니라, ‘극좌주의’의 궤멸이라는 평가다. 보 서기가 공산혁명사상에 기반해 만들어낸 경제·사회적 지도이념인 ‘충칭 모델’에 대해 집권층이 십자포화를 가했다는 설명이다.
충칭모델은 문화대혁명 때의 산물인 하방(下放·지도계층의 육체노동)을 의무화하고 창훙(唱紅·혁명가요 부르기) 붐을 일으키는 극좌적 요소가 다분한 것으로 지적됐다. 자본주의를 도입한 공산당의 지도이념과는 괴리를 갖고 있다. 특히 빈부격차의 확대 등으로 집단시위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이 같은 극좌주의적 실험은 공산당의 안정적 집권에 장애물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평이다. 보 서기 해임 직후 그를 지지해온 좌파들의 논단사이트인 ‘우유즈샹’(烏有之鄕) 등이 일제히 폐쇄되고,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에 경비병력이 크게 늘어난 것은 이번 사태를 다루는 공산당 지도부의 시각이 반영된 것이라고 홍콩 빈과일보가 전했다.
○원리주의자로 변신한 보시라이
중국은 30여년의 개혁개방으로 급속한 경제성장을 거뒀다. 그러나 성장과정에서 나타난 빈부격차,부정부패,환경오염 등의 문제는 개혁·개방세력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사회의 불평등 격차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2010년 말 0.5에 달했다. 통상 0.4를 넘으면 사회적 불안이 초래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소득이 2300위안(40만원) 미만인 빈곤층도 1억2000만명에 달한다. 매년 10만건 이상의 집단시위가 발생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보시라이의 충칭모델은 이런 상황에 대한 반작용으로 해석된다. 보시라이는 혁명원로로 국무원 부총리를 지낸 보이보의 아들이다.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한때 총리후보로까지 부각되기도 했다.그러나 독선적인 태도 등이 문제가 되며 2007년 공산당의 최고권력기구인 정치국 상무위원 진입에 실패하고 충칭시 서기에 임명됐다.
보서기는 충칭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며 승부수를 던졌다. 폭력조직은 물론 그들과 결탁한 권력가들을 사형시키면서 대중적 인기가 높아졌다. 게다가 △국유기업을 적극 육성한 뒤 그 이익금을 주민 복지에 쓰고 △농민공에게 도시 호적을 주고 대규모 임대주택을 보급하는 등 친 빈자(賓者)정책을 폈으며 △홍가부르기 하방(下放) 실시 TV오락프로그램 방영금지 등 혁명정신 고취로 사회개조를 추구했다.
리시광(李希光) 칭화대 교수는 “충칭은 서구식 경제개발 모델을 뛰어넘어 자본주의와 계획경제가 공존하는 새로운 발전 모델을 보여줬다”며 “세계 민중의 희망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었다. 그의 해임에 대해 대표적인 좌파 학자인 공칭둥(孔慶東)은 “억만 중국인들의 가슴에 큰 상처를 줬다”며 눈물을 뿌리기도 했다.
○상하이방 공청단의 십자포화
한 야심가가 대중적 인기를 등에 업고 극좌적 실험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지도부는 큰 위협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그의 심복인 리커창 부총리는 물론 무당파인 원자바오 총리는 보 서기의 취임 후 충칭을 단 한번도 방문하지 않았다. 같은 태자당인 시진핑 부주석은 충칭을 찾긴 했지만, 이번 사태에서 보 서기를 보호하는 데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도부 간에는 공산당에 집중된 과도한 권력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분산할 것인가가 논의되고 있는 데 반해 보 서기는 반대 행보를 보이고 있는 데 부담을 느꼈다는 것.
이런 관점의 차이는 지난 14일 원 총리가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 기자회견 때 “개혁하지 않으면 문화대혁명이 다시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한 데서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문화대혁명이 바로 보시라이의 충칭식 모델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보시라이에 대한 중앙 지도부의 견제가 심화된 것은 그의 독특한 캐릭터도 영향을 미쳤다. 서열을 중시하고,분쟁을 공론화하지 않고, 이면협상을 중시하는 중국의 전통지도부와 달리 그는 직선적이고 카리스마적 정치를 구사한다. 또 대중 앞에서는 철저한 쇼맨십으로 당 지도부에 ‘통제불능’의 이미지를 심어줬다는 것이다. 또 다롄시 서기와 랴오닝성 서기를 역임할 때는 개혁개방을 강조하다가, 충칭시 서기로 부임해선 극좌적 실험을 하는 등 인기영합적인 태도를 보인 것도 불신을 초래한 요인이다. 결국 보의 몰락은 그가 개혁·개방 자체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기존 지도부가 측근인 왕리쥔 충칭부시장의 비리를 캐는 방법으로 그를 쳐낸 것이라는 해석이다.
○좌향좌는 없다
장밍 런민대 교수는 “현재 중국 지도부 중에서 순수한 의미의 좌파는 없다”며 “앞으로 중국의 개혁은 우파의 개혁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올해 중국 정부는 매년 8% 이상 유지하던 성장률을 7.5%대로 낮추는 대신 민생해결에 주력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임금상승을 유도하고 일자리창출,사회보장 강화,의료개혁 등 서민들의 불만을 해소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올해 중 소득분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종합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최저임금을 획기적으로 올리고 주민수입이 경제성장률을 초과하도록 하고 동시에 사회보장제도를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불법적인 수입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후진타오 정부는 집권 후 10년 동안 성장보다는 분배 개선을 통한 허셰(和諧)사회 구현을 추구해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성장에 급급해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는 데 실패했다는 평가를 듣는다. 보시라이 사태를 계기로 좌파의 기세를 꺾은 중국 정부가 얼마나 강력한 개혁안을 내놓을 수 있을지 관심이다.
◆문화대혁명
1966년부터 10년간 마오쩌둥과 측근들이 주도한 극좌 사회주의 운동. 젊은 학생들을 중심으로 홍위병을 조직, 수많은 지식인을 반동으로 몰아 죽이거나 농촌으로 강제노동을 보내는 하방(下方)을 시켰다. 76년 마오쩌둥이 사망하고 이를 주도한 장칭(江靑) 등 소위 ‘4인방’이 체포되면서 막을 내렸다.
◆정치국 상무위원
중국 정치의 핵심권력인 국가 주석, 전인대 상무위원장, 국무원 총리 등 최고위직을 겸임하고 있는 최고 실세 그룹이다. 7~9명으로 구성된다.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가 선출하는 정치국 위원 중에 선임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당 원로와 정파 간 협상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이징=김태완 특파원 twkim@hankyung.com
보시라이 충칭시 서기가 전격 해임된 데 대해 장밍(張鳴) 런민대 정치학과 교수는 16일 이렇게 말했다. 정치적 야망이 가득한 한 명망가의 몰락일 뿐 아니라, ‘극좌주의’의 궤멸이라는 평가다. 보 서기가 공산혁명사상에 기반해 만들어낸 경제·사회적 지도이념인 ‘충칭 모델’에 대해 집권층이 십자포화를 가했다는 설명이다.
충칭모델은 문화대혁명 때의 산물인 하방(下放·지도계층의 육체노동)을 의무화하고 창훙(唱紅·혁명가요 부르기) 붐을 일으키는 극좌적 요소가 다분한 것으로 지적됐다. 자본주의를 도입한 공산당의 지도이념과는 괴리를 갖고 있다. 특히 빈부격차의 확대 등으로 집단시위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이 같은 극좌주의적 실험은 공산당의 안정적 집권에 장애물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평이다. 보 서기 해임 직후 그를 지지해온 좌파들의 논단사이트인 ‘우유즈샹’(烏有之鄕) 등이 일제히 폐쇄되고,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에 경비병력이 크게 늘어난 것은 이번 사태를 다루는 공산당 지도부의 시각이 반영된 것이라고 홍콩 빈과일보가 전했다.
○원리주의자로 변신한 보시라이
중국은 30여년의 개혁개방으로 급속한 경제성장을 거뒀다. 그러나 성장과정에서 나타난 빈부격차,부정부패,환경오염 등의 문제는 개혁·개방세력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사회의 불평등 격차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2010년 말 0.5에 달했다. 통상 0.4를 넘으면 사회적 불안이 초래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소득이 2300위안(40만원) 미만인 빈곤층도 1억2000만명에 달한다. 매년 10만건 이상의 집단시위가 발생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보시라이의 충칭모델은 이런 상황에 대한 반작용으로 해석된다. 보시라이는 혁명원로로 국무원 부총리를 지낸 보이보의 아들이다.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한때 총리후보로까지 부각되기도 했다.그러나 독선적인 태도 등이 문제가 되며 2007년 공산당의 최고권력기구인 정치국 상무위원 진입에 실패하고 충칭시 서기에 임명됐다.
보서기는 충칭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며 승부수를 던졌다. 폭력조직은 물론 그들과 결탁한 권력가들을 사형시키면서 대중적 인기가 높아졌다. 게다가 △국유기업을 적극 육성한 뒤 그 이익금을 주민 복지에 쓰고 △농민공에게 도시 호적을 주고 대규모 임대주택을 보급하는 등 친 빈자(賓者)정책을 폈으며 △홍가부르기 하방(下放) 실시 TV오락프로그램 방영금지 등 혁명정신 고취로 사회개조를 추구했다.
리시광(李希光) 칭화대 교수는 “충칭은 서구식 경제개발 모델을 뛰어넘어 자본주의와 계획경제가 공존하는 새로운 발전 모델을 보여줬다”며 “세계 민중의 희망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었다. 그의 해임에 대해 대표적인 좌파 학자인 공칭둥(孔慶東)은 “억만 중국인들의 가슴에 큰 상처를 줬다”며 눈물을 뿌리기도 했다.
○상하이방 공청단의 십자포화
한 야심가가 대중적 인기를 등에 업고 극좌적 실험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지도부는 큰 위협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그의 심복인 리커창 부총리는 물론 무당파인 원자바오 총리는 보 서기의 취임 후 충칭을 단 한번도 방문하지 않았다. 같은 태자당인 시진핑 부주석은 충칭을 찾긴 했지만, 이번 사태에서 보 서기를 보호하는 데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도부 간에는 공산당에 집중된 과도한 권력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분산할 것인가가 논의되고 있는 데 반해 보 서기는 반대 행보를 보이고 있는 데 부담을 느꼈다는 것.
이런 관점의 차이는 지난 14일 원 총리가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 기자회견 때 “개혁하지 않으면 문화대혁명이 다시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한 데서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문화대혁명이 바로 보시라이의 충칭식 모델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보시라이에 대한 중앙 지도부의 견제가 심화된 것은 그의 독특한 캐릭터도 영향을 미쳤다. 서열을 중시하고,분쟁을 공론화하지 않고, 이면협상을 중시하는 중국의 전통지도부와 달리 그는 직선적이고 카리스마적 정치를 구사한다. 또 대중 앞에서는 철저한 쇼맨십으로 당 지도부에 ‘통제불능’의 이미지를 심어줬다는 것이다. 또 다롄시 서기와 랴오닝성 서기를 역임할 때는 개혁개방을 강조하다가, 충칭시 서기로 부임해선 극좌적 실험을 하는 등 인기영합적인 태도를 보인 것도 불신을 초래한 요인이다. 결국 보의 몰락은 그가 개혁·개방 자체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기존 지도부가 측근인 왕리쥔 충칭부시장의 비리를 캐는 방법으로 그를 쳐낸 것이라는 해석이다.
○좌향좌는 없다
장밍 런민대 교수는 “현재 중국 지도부 중에서 순수한 의미의 좌파는 없다”며 “앞으로 중국의 개혁은 우파의 개혁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올해 중국 정부는 매년 8% 이상 유지하던 성장률을 7.5%대로 낮추는 대신 민생해결에 주력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임금상승을 유도하고 일자리창출,사회보장 강화,의료개혁 등 서민들의 불만을 해소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올해 중 소득분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종합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최저임금을 획기적으로 올리고 주민수입이 경제성장률을 초과하도록 하고 동시에 사회보장제도를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불법적인 수입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후진타오 정부는 집권 후 10년 동안 성장보다는 분배 개선을 통한 허셰(和諧)사회 구현을 추구해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성장에 급급해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는 데 실패했다는 평가를 듣는다. 보시라이 사태를 계기로 좌파의 기세를 꺾은 중국 정부가 얼마나 강력한 개혁안을 내놓을 수 있을지 관심이다.
◆문화대혁명
1966년부터 10년간 마오쩌둥과 측근들이 주도한 극좌 사회주의 운동. 젊은 학생들을 중심으로 홍위병을 조직, 수많은 지식인을 반동으로 몰아 죽이거나 농촌으로 강제노동을 보내는 하방(下方)을 시켰다. 76년 마오쩌둥이 사망하고 이를 주도한 장칭(江靑) 등 소위 ‘4인방’이 체포되면서 막을 내렸다.
◆정치국 상무위원
중국 정치의 핵심권력인 국가 주석, 전인대 상무위원장, 국무원 총리 등 최고위직을 겸임하고 있는 최고 실세 그룹이다. 7~9명으로 구성된다.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가 선출하는 정치국 위원 중에 선임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당 원로와 정파 간 협상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이징=김태완 특파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