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위기에 불안해하지 말고 침착하게 대응책을 마련한다면 더 큰 기회가 올 것이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사진)은 지난달 제네바 모터쇼를 참관하기 위해 스위스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 회장은 현대·기아차 유럽본부 임원 회의를 주재하면서 “글로벌 자동차 시장 위축은 위기의 진원지인 유럽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앞서 작년 9월 체코공장을 방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창의적이고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글로벌 업체 중 유일하게 성장세를 이어갔던 저력을 갖고 있다”며 현지 판매를 독려했다.

위기일수록 움츠리는 대신 공격적으로 나가 정면 돌파하는 ‘역발상 경영’이다. 현대·기아차가 독일 수입자동차 시장에서 처음으로 1위에 오른 것은 정 회장 특유의 뚝심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많다.

○i10·i20·i30 3형제 질주

현대차의 유럽 주력 차종은 i10·i20·i30 등 i시리즈 3인방이다. 각각 인도와 터키, 체코 공장에서 생산해 독일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 공급한다. 지난 1분기 독일시장에서 i10은 3306대, i20는 2678대, i30(신형 포함)는 7569대가 각각 판매됐다. 체코공장에서 만드는 투싼ix도 3301대가 팔려 판매 신장에 효자노릇을 했다.

현대·기아차가 독일 수입차 시장을 석권한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는 시각도 있다. 뛰어난 성능과 품질로 현지에서 잇따라 호평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작년 12월 유럽 최고 권위의 자동차 전문지 아우토빌트가 실시한 ‘2011 품질만족도 조사’에서 현대차는 벤츠 BMW 폭스바겐 도요타 등 독일과 일본의 유력 브랜드를 제치고 2년 연속 1위에 올랐다.

아우토빌트가 작년 6월 실시한 ‘유럽 대표 경차 6차종 비교 평가’에서는 기아차 ‘모닝’(현지명 피칸토)이 1위, 현대차 ‘i10’이 2위를 각각 차지했다. 아우토빌트는 모닝에 대해 “실내 공간이 넓고 안락하며 운전의 즐거움을 주면서도 높은 경제성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재정위기 여파로 유럽 자동차업체들이 감산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현대·기아차가 품질과 가격 경쟁력, 맞춤형 마케팅을 앞세워 독일시장을 공략한 게 주효했다”며 “정몽구 회장의 승부수가 통했다”고 말했다.

○공격적인 마케팅도 ‘한몫’

현대·기아차가 유럽의 불황을 뚫고 소형차 부문 최강자인 폭스바겐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는 데는 공격적인 마케팅도 한몫했다. 작년 1분기만 해도 현대·기아차는 2만9643대의 판매 실적으로 르노(4만737대)와 폭스바겐 계열의 스코다(3만6213대)에 크게 뒤져 있었다.

현대차는 올초 독일 현지법인을 설립해 직영 판매체제를 구축, 판매와 마케팅 역량 강화에 나섰다. 해외 판매 네트워크는 일반적으로 공급자와 대리점, 딜러의 3자 관계로 이뤄져 있다. 이 중 대리점은 직접 소비자들에게 제품을 판매하는 딜러를 관리하는 핵심 거점이다. 현대차는 이 대리점을 인수해 제품 공급자가 대리점을 소유하게 됐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직영 판매체제는 직접적인 판매거점 및 마케팅 운영으로 대리점 체제에 비해 중장기 전략 수립 및 추진이 쉽다”며 “고객들에게 일관되고 통일된 메시지를 전달해 이미지를 높일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유럽시장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 독일”이라며 “독일 소비자들이 현대차 쪽으로 옮겨간다는 것은 현대·기아차가 그만큼 소비자들의 니즈(요구)를 잘 읽어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