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이사는 바람막이?…3명 중 1명 '고위 공직자 출신'
12월 결산법인 100대 기업(시가총액 기준)이 올 주주총회에서 선임했거나, 선임할 예정인 사외이사의 3분의 1은 고위 공무원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사외이사를 재선임하는 재선임률도 절반을 넘어섰다. 전문가들은 “고위 공무원들의 경험과 전문성을 활용하겠다는 취지지만, 이들을 바람막이로 활용하기 위한 의도도 깔려 있다”고 보고 있다.

○여전히 높은 전직 공무원 비율

1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2월 결산법인 100대 기업(시가총액 기준) 가운데 68곳은 이달 정기 주총에서 182명의 사외이사를 영입했다.

이번에 신규 선임, 혹은 재선임 대상 사외이사들을 직업별로 살펴보면 교수가 65명으로 가장 많았다. 전직 공무원도 △장·차관 등 고위 공무원 출신 29명 △검찰 출신 11명 △법원 출신 3명 △국세청 출신 9명 △공정거래위원회 출신 8명 등 60명이었다.

전직 공무원 가운데는 장관 출신이 대거 이름을 올렸다. 송정호 전 법무부 장관(고려아연), 권오규 전 재정경제부 장관 겸 부총리(효성),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BS금융지주), 이환균 전 건설교통부 장관(SKC&C), 이희범 전 산업자원부 장관(대한항공), 권오승 전 공정거래위원장(KCC), 김인호 전 공정거래위원장(KT&G) 등 7명이나 된다.

권력기관으로 꼽히는 검찰 국세청 공정위 고위 관료 출신도 상당수 사외이사로 선임된다. 검찰에서는 김태현 전 대검 감찰부장(롯데쇼핑), 박용석 전 법무연수원장(현대산업개발), 윤동민 전 법무부 기획실장(삼성전자) 등이 새로 영입됐다.

공정위에서는 주순식 전 상임위원(현대중공업)과 이동훈 전 사무처장(현대글로비스) 등이, 국세청에서는 이주석 전 서울지방청장(대한항공), 임성균 전 광주지방청장(대림산업) 등이 새로 사외이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높은 재선임 비중

이번 주총에서는 전체의 52.7%인 96명이 재선임된 것으로 나타났다. 보통 사외이사 임기가 3년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최장 6년까지 해당 기업과 인연을 맺는 셈이다.

이에 따라 사‘ 외이사가 경영 투명성 감시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기보다 특정 기업과 공생(共生) 관계를 형성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됐을 때는 경영진과 대립각을 세울 수 있지만, 오랜 기간 접촉하다 보면 경영진의 의사와 상충되는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한 상장사 최고경영자(CEO)는 “전문성을 가진 사람 외에도 신규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도움을 받은 공무원이나 교수들을 감사의 뜻으로 사외이사로 영입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그렇지 않은 회사도 상당수다. 한 상장사 최고 재무책임자(CFO)는 “지난해 반드시 필요한 운전자금 용도로 회사채를 발행하는 과정에서 몇몇 사외이사가 도와주기는 커녕 ‘딴죽’을 걸어 진땀을 흘린 적이 있다”고 전했다.

송종현/안상미 기자 scream@hankyung.com